[의료칼럼] 사전(事前) 의료지지서
임영빈
연세메디컬클리닉
노년내과 전문의
사전 의료지지서는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 미국의 경우에는 공증을 통해 법적인 효력이 인정되기도 할 만큼 널리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환자가 의식이 있으면 본인의 가치관과 판단을 존중하여 결정을 내리면 되지만, 의식이 없는 경우 대신 결정하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의식이 있고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시기에 미리 환자의 뜻을 서면으로 밝혀두는 것이 사전 의료지지서이다. 의식이 없을 때, 인공호흡기를 사용할 지, 중환자실에 입원할 지, 심폐소생술을 할 지에 대한 환자의 생각을 미리 적어두는 것이다. 그러면 임종 전에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미리 없앨 수 있고, 환자의 뜻과 결정을 더욱 존중할 수 있게 된다. 지지서를 작성할 때에는 무섭고 떨려 꼭 해야되나 생각이 들텐데, 하지만 나의 존엄한 임종을 위하여 준비를 한다고 생각하고 가족들이 중대한 결정을 실행하는데 마음이 훨씬 편하다. 크게는 대리인 위임과 사전 의사결정으로 이해하면 된다.
의학적 치료 대리인 - 본인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게 될 경우 나를 대신해 의학적 치료선택을 해 줄 것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지명하면 된다. 나와 가까운 사람, 가족이나 친구 중에서 생각해 봐야한다. 나의 의학적 치료 대리인 역할을 해 줄 만한 사람을 선택하고, 그 사람에게 대리인 역할을 해 줄 수 있겠는지 물어봐야 한다.
사전 의사 결정 - 가치관을 중요시한다. 예를 들어, 내가 아무리 아파도 항상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표기할 수도 있고, 또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날 수 있는 경우, 아니면 내가 가족 및 친구들과 얘기할 수 있는 경우에만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표기할 수 있다. 또한 내가 죽어가고 있다면 내 집에 있는 게 편한지, 병원이나 요양병원에 있는 것을 원하는 지도 표기가 가능하다. 응급상황에 놓이면 판단이 흐려져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기 사용에 대해 제대로 결정하지 못한 채 결정하게 된다. 이 둘은 언제든지 내 주치의나 응급상황에 놓였을 때 입원 담당의와 상의하면 된다.
심폐소생술 - 만약 독자가 운동을 하는 도중 심장마비가 와 쓰러졌다고 가정해보자. 주위 사람들이 911에 연락해 구조대원이 오고, 심폐소생술을 하며 병원으로 이송하여 심장에 관한 치료를 받는다. 이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졌을 것이다. 이렇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이 보편적으로 모든 시민에게 적용된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 예를 들어 말기암 진단을 받아 아무리 항암치료를 받아도 호전되는 것이 없는 경우, 심정지가 왔을 때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는다고 결정할 수 있다. 심정지가 왔을 때 자연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환자의 권리를 알려주는 것이다.
인공호흡기 - 만약 독자가 숨이 차서 병원에 갔는데, 산소 마스크를 사용해봐도 효과가 없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바로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며 폐를 치료하니 좋아져 인공호흡기를 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시도해 보는 것이 괜찮은가? 물론, 이렇게 시도해 보는 정도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폐가 좋아지지 않거나, 인공호흡기를 빼지 못 하는 경우가 온다면 어떻게 하고 싶은가? 그런 경우 대부분 환자 본인은 코마 상태이기 때문에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다. 대신 법적 대리인이 결정을 내려줘야 하는데 이는 매우 어렵다.
인공호흡기에 매달려 연명하지 않으려면 - 인공호흡기를 중단하자고 하는 결정은 왠지 사람을 죽이는 행위같이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대리인의 감정이 앞서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에 어쩌다 보니 연명을 하게 되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러니 사전에 이런 대화를 대리인과 나눠야 한다. 만약 대리인이 배우자나 자식들이라면, 미리 대화를 꺼내는 것이 좋다. 만약 인공호흡기에 호흡을 의존하고 있는데 여러 의사들이 예후가 좋지 않다고 하며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인공호흡기를 중단해달라고 의뢰할 수 있다. 문의 (213) 381-3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