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 사랑의 교회가 카톡 중단으로 인해 온라인 예배 플랫폼을 유튜브로 전환한다는 긴급 안내문을 띄우기도 했다.

카톡 먹통에 일상도 갑갑

지인과 소통 단절된 느낌, “셀폰 번호라도 알고 지내야”

LA시간 14일 자정을 앞두고 가입자 5000만명의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이 판교 데이터 센터 화재로 작동을 멈추자 남가주 한인사회도 일상에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인쇄업을 하는 A씨는 주말에도 급한 간행물 주문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재택근무로 디자인과 교정작업을 진행하는 직원들과 연락이 막혀 한동안 애를 태웠다. 평소처럼 카톡으로 도안을 비롯한 여러 수정 사항을 주고받았는데, 보낸 메시지가 몇 시간째 ‘읽지 않음’ 상태로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카톡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부랴부랴 이메일로 파일을 처리했지만, 이것 때문에 공정이 몇 시간 늦어지며 인쇄소 현장 직원들의 적지 않은 오버타임이 발생하고 말았다.

또 이튿날(15일) 오전 골프 약속이 있던 B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 티오프 시간에 30분가량 늦을 것 같다는 카톡 문자를 보냈다. 당연히 통보가 됐으리라 생각하고 일을 본 뒤 합류했다가 지인들의 짜증 섞인 볼멘소리를 들어야 했다. “늦으면 늦는다고 연락을 했어야지”라는 불평이었다. “무슨 소리냐, 카톡 보내지 않았냐”고 열심히 해명했지만, 한동안 무례한 사람 취급은 어쩔 수 없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친지와 연락이 닿지 않아 애를 태우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주말이어서 경조사가 많은 때였다. 마침 결혼식 축의금도 전달할 일이 있었는데,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한번씩 화상통화(페이스톡)로 떨어진 가족들과 얼굴 보며 얘기하는 날인데 못하고 말았다” 같은 안타까운 일들이 부지기수였다.

직장생활을 하는 50대 케이 정씨는 “이번 사태로 새삼스러운 것을 깨달았다. 요즘은 휴대폰 번호는 모른 채 카톡으로만 연결하는 경우도 많다. 왠지 그렇게 하면 조금 더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해준다는 느낌이었는데, 막상 그게 끊어지니까 관계가 완전히 두절된 느낌이 들더라”며 “이제 직장 동료나 교회 분들과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 같은 것도 교환하며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카카오 본사는 “유례없는 대형 사고”라면서 전 직원을 동원해 복구 작업을 펼친 끝에 15일 오후 무렵부터 카카오톡 메신저 등 주요 서비스가 복구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연 현상은 계속돼 완전 복구가 언제 될 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IT업계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세계 최초 5G 이동통신 서비스 시작 등 IT 강국으로 통했던 한국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말이 나온다.

이번 사태를 통해 플랫폼 독점 사회로 변모한 한국 사회의 취약성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카카오·네이버 아이디만 있으면 민간뿐 아니라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편의 서비스 대부분을 이용할 수 있는 ‘초연결 사회’가 한순간에 모든 것이 마비되는 ‘초먹통 사회’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전 국민이 사용하는 포털과 메신저를 각각 보유한 네이버와 카카오는 최근 10여 년간 금융·결제·쇼핑·여가 등으로 서비스 영역을 무차별 확장해왔다. 정부조차 카카오톡을 통해 코로나 백신 접종, 맞춤형 복지 같은 서비스를 안내하고 있다. 보안 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의 아이디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세상이 됐지만, 역설적으로 두 회사가 문제를 일으키면 전국이 마비되는 플랫폼 종속 사회가 돼버렸다고도 볼 수 있다”고 했다.

16일 대통령실은 “업계와 정부가 합심해 서비스를 신속하게 정상화해달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주문을 전하면서 “초연결 사회에서 데이터 통신 인프라는 국가 안보와 국민 생활에 직결된다”며 “네트워크망 교란은 민생에 상당한 피해를 줄 뿐 아니라 유사시 국가 안보에도 치명적 문제를 야기한다”고 밝혔다.

백종인·장형태 기자 <기사 B-9, 10, 1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