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바이올리니스트 그래미상 수상
그래미상 최우수 클래식 기악 독주 부문을 수상한 제니퍼 고 교수. EPA/ETIENNE LAURENT
매네스 음대 제니퍼 고 교수
“아무리 힘들고 암울한 시대라고 해도 음악을 통해서 나눌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믿었어요.”
3일 그래미상 ‘최우수 클래식 기악 독주(Best Classical Instrumental Solo)’ 부문을 수상한 한인 바이올리니스트 제니퍼 고(46) 매네스 음대 교수가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한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수상한 분야와 같다. 제니퍼 고에게 그래미상을 안겨준 바이올린 독주 음반 ‘홀로 다 같이(Alone Together)’는 제목처럼 코로나 시대의 자가 격리가 낳은 산물이다.
지난 2020년 코로나 사태가 일어난 직후, 제니퍼 고는 젊고 전도 유망한 작곡가들에게 5분 이내의 짧은 바이올린 독주곡을 써달라고 부탁하기 시작했다. 그는 “코로나로 인해서 연주 무대가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건 결국 젊은 음악가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014년 자신이 창설한 비영리 음악 단체 ‘아르코 컬래버러티브(ARCO Collaborative)’를 통해서 작곡가들을 위한 위촉 기금을 마련했다. 자신은 무료로 연주했다.
그해 4월부터 제니퍼 고는 자신의 거실에서 젊은 작곡가들의 신곡을 연주한 뒤 직접 촬영한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시대의 ‘온라인 콘서트’가 열린 셈이었다. 그는 “전문적 장비를 갖춘 스튜디오가 아니라 집에서 휴대전화로 직접 촬영해서 영상을 올렸다”고 말했다. 그렇게 한 곡씩 쌓이면서 40곡의 신곡이 모이자, 제니퍼 고는 시카고의 독립 음반사인 ‘세이디’를 통해서 이 곡들을 정식으로 다시 녹음했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프로젝트에 대해 “위기의 시대를 위한 기적(marvel)”이라고 평했다.
제니퍼 고는 시카고의 한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2세다. 11세 때 명문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영재 출신 연주자로 199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1위 없는 공동 2위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미국서 활동하는 젊은 음악 유망주에게 수여하는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상’을 받았다. 바이올린 거장 아이작 스턴의 추천으로 커티스 음악원에서 공부했고, 오벌린대에서는 바이올린과 영문학을 복수 전공했다.
바흐와 베토벤 같은 고전뿐 아니라 현대음악에도 애정을 쏟는 것도 그의 특징이다. 지금까지 초연한 신곡만 100여 곡에 이른다. 제니퍼 고는 “지금은 6·25전쟁 당시 월남한 뒤 미국으로 이민한 어머니의 삶을 담은 음악극을 준비 중”이라며 “미국에서 활동하는 아시아 연주자의 정체성을 반영한 작업들을 꾸준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