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산책, 삶의 산책] 세상에 온 내 손자를 환영하며
최석호
전 어바인 시장
전 가주하원 의원
2023년 5월 4일 오후 7시35분, 내 손자가 세상에 왔다. 딸에게서 난 외손자 외손녀를 합하면 세 번째의 손주이지만 한국식 전통에 따르자면 내 '최씨' 가문의 대를 이어갈 종손의 가문으로서는 첫 손자이다. 나도 늦게 결혼해서 내 첫 아들을 낳은 때가 39살이었는데 내 아들은 나보다 두 살 후인 41살에야 내게 손자를 안겨준 것이다. 너무 반가와서 밤 10시가 가까웠는데도 손자를 만나려고 병원으로 쫓아갔다.
이미 내 앞에 달려 온 내 처와 사돈네 부부가 와서 두 명은 산모실에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은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손자 만날 설레임을 누르고 규정에 따라 나도 내 차례를 기다렸다. 마음 속에 감사가 넘쳐났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내 자녀들이 모두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서로 먼 곳에 떨어져 산다면 이런 기쁨의 순간을 같이 나눌 수가 없었을 것이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산모실에 들어가 안사돈의 품에 안겨 자고 있는 손자와 대면을 했다. 예정일에 순산해서 산모와 아기가 건강함에 감사했다. 보자기에 쌓인 아이 가슴 위에 손을 얹고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그의 육신이 강건하고 지혜가 총명하고 사회에 유익한 인물로 양육하고 지켜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렸다.
그의 영문 이름은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뜻이라는 재커리(Zachary), 그리고 한국이름으로는 도모하는 일마다 순조롭고 대성을 이루며 인품이 고귀하고 매사 주도면밀하여 부모형제와 부부가 안락하고 부귀장수 한다는 뜻을 갖는다는 서준이라고 그의 부모가 정해 주었다.(재커리 사진 여기 삽입)
41년 전 내 첫 아이가 탄생했을 때의 감동이 생생하게 생각난다. 나는 부모형제가 당시에 한국에 살고 있었기에 출산하는 병원으로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이 기쁘면서도 외롭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우리 부부 단 둘이 감당해야 했다. 그때도 모든 게 순조롭게 순산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퇴원의 날이 와서 405 프리웨이를 타고 운전하면서 1월 겨울철 하얗게 눈으로 덮인 새들백산 정상을 바라보며 퇴원해 당시 살던 미션비에호 집으로 운전해 가던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바로 그 아이가 성장해서 내가 경험한 것을 그대로 경험하는 것을 보니 참으로 인생의 대물림의 사이클의 조화가 신비스럽기만 하다.
이렇게 해서 인류의 역사가 수천수만 년을 이어왔고 또 이어져 갈 것이지만 갓난아이의 무기력함을 보고 질문도 많이 생겨났다. '지금 세상이야 문명이 발전되어 애기에게 필요한 온갖 물건들이 즐비하지만 기저기만 하더라도 그 옛날에는 어떻게 감당을 했을까?'를 궁금해 하면서 나 키우시던 어머니의 고생도 상상해 보았다. 사람은 자식을 낳아서 키워 보아야 '철'이 들고 '효심'도 더 커지는가 보다 라는 마음도 든다.
짐승은 새끼가 성장해서 독립능력이 생길 때까지의 기간이 별로 길지 않은 것을 보지만 인간은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최소 5년, 10년 이라는 긴 세월을 필요로 하니 인간은 강하면서도 연약하기 그지없는 존재 같다. 말 그대로 하루 24시간이 감시대상이다. 왜 갓난아이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소리질러 울면서 엄마 젖을 찾을까? 한 밤중에도 운이 좋으면 2~3시간, 아니면 1~2시간마다 같은 반복이라니 유모가 쉴 새가 없단다.
갓난애기가 우는 것은 배고프거나 기저기를 갈아 달라는 신호 중의 하나라는 것을 엄마들'로부터 배웠다. 처음 엄마 되는 엄마는 ‘나도 태어나서 이 애와 똑같았겠지– 우리 엄마도 나 키우면서 잠 못 잤겠지’ 하며 효심을 가슴에 심을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남편도 같은 ‘성장’이 이뤄지면 다행이겠으나 아기 울음소리가 본인의 코골이 소리에 뭍혀 상관없이 잠만 쿨쿨 잔다면 이 깊고 깊은 인간 지혜 체득의 기회를 놓치고 말 것이다. 80여년 전 그나마도 시골에서 우리 8남매를 낳아 키워 내신 내 어머니의 수고는 어떠했을까 상상해 본다. 이렇게 해서 인간의 역사가 대를 이어가고 있다. 재커리, 월컴 투 더 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