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근 목사

새누리 침례교회 담임

오래 전 보스톤의 한 보호소에 앤(Ann)이라는 소녀가 들어왔다. 그녀의 엄마는 죽었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아빠로 인한 마음의 상처에다 보호소에 함께 들어왔던 동생이 세상을 떠나자 앤은 그 충격으로 정신이 이상해졌고 실명까지 하게 되었다. 수시로 자살을 시도하고 괴성을 질렀다. 결국, 앤은 회복불능 판정을 받고 정신병동 지하 독방에 수용되고 말았다. 죽을 때까지 거기에 머물다 가는 것이다. 

그때 노 간호사인 로라(Laura)가 앤을 돌보겠다고 나섰다. 로라는 특별한 정신치료를 시도하기보다는 그냥 앤과 같이 있어 주었다. 날마다 과자를 들고 가서 책을 읽어주고 기도해 주었다. 그러나 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한결같이 사랑을 쏟아부었지만 앤은 견고한 담벼락 같았다. 아무 말이 없었고 정성스럽게 준비해서 가져온 음식도 먹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로라는 앤 앞에 둔 접시에서 초콜렛 하나가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앤이 몰래 집어 먹었음이 틀림없었다. 이것은 그녀에게 삶에 대한 애착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기에 용기를 얻은 로라는 계속해서 성경을 읽어주고 앤을 위해 기도를 해주었다. 

그러자, 앤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2년 만에 앤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파킨스 시각장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몇 년 후 그녀는 최우수 성적으로 시각장애자학교를 졸업했다. 이 사연을 아는 한 신문사의 도움으로 앤은 개안수술을 하고 밝은 삶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녀는 새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의 사랑이 한 생명을 살려낸 것이다. 그러나 스토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느 날 앤이 신문에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를 돌볼 사람을 구한다”라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앤은 그 아이에게 자신이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로 맘을 먹었다. 주변 사람들이 그런 삼중고의 장애자를 돌보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만류를 했지만, 앤은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라고 말하고 그 아이의 집으로 들어가 그 아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자신이 로라에게서 받은 사랑을 전하는 시간이었다. 

결국, 앤은 그 아이와 48년을 함께 하며 20세기 대기적을 일궈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우리가 잘 안다. 그 아이가 바로 헬렌 켈러였고 그를 키워낸 선생이 앤 설리번(Ann Sullivan)이다. 로라에서 앤, 그리고 헬렌으로 이어지는 사랑의 고리가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기적은 멀리 있지 않다. 사랑 안에 있다. 제도나 물질적인 부가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참된 사랑이 이 땅을 더 밝고 행복하게 만든다. 

우리는 테크놀로지의 시대를 살고 있다. 최첨단 기술(IT)과 인공지능(AI)이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파고들고 있다. 해서, 삶은 더 편리해졌지만, 우리의 심성은 말라가고 있다. 기계화되고, 차가워져 가고 있다. 이웃의 아픔에 관심을 쏟지 않는다. 이와 같은 때에 참된 사랑의 기적을 되살릴 순 없을까? 사심 없는 희생을 통해 무너진 인생들을 도울 손길은 없을까? 요즈음 신문에 잇따라 보도되는 자살과 가정의 참극을 보면서 사랑의 회복을 놓고 기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