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인사회가 화합하고 전진하길 기원할 겁니다"
제49회 LA한인축제 코리안 퍼레이드의 그랜드 마샬로 선정된 박형만 회장이 지난주 본보를 방문해 기념촬영을 했다. 아래 사진은 박 회장이 인터뷰하는 모습.
만희복지재단 박형만 회장
제49회 LA한인축제 그랜드 마샬
24일 올림픽길 카퍼레이드 탑승
"55년 이민 생활 인정받은 듯 해
너무 설레, 이런 영광 다시 없어"
“설레고 또, 감개무량하기도 하고….”
만희복지재단 박형만(85) 회장에게 이번 일은 ‘운명’처럼 다가선다. 박 회장은 오는 24일 오후 3시 제49회 LA한인축제 코리안 퍼레이드에 그랜드 마샬 자격으로 탑차에 오르게 됐다. 그런데, 퍼레이드의 시작점이 올림픽과 카탈리나길에 자신이 세운 주상복합아파트 ‘만희매너’ 바로 앞이다. 지하 2층 지상 5층 규모로 70유닛짜리 최신 건물인 만희매너는 ‘아파트왕’ 박 회장의 22번째 건물이다. 박 회장은 한인타운을 중심으로 주변에 22개 아파트, 총 550유닛을 소유하고 있다.
만희매너는 그 중에서도 박 회장이 유독 자랑스러워 하는 건물이다. 싯가로 4000만달러가 넘는 이 아파트는 박 회장의 아메리칸 드림의 완성판인 탓이다. “2016년 4월 공사를 시작해 코로나 팬데믹이란 우여곡절을 거치며 2020년 3월 완공했어요. 어려운 시기라 분양을 걱정했는데, 정말 ‘기적’처럼 방이 모두 나갔지요.”
박 회장이 자랑스러워 하는 것은 어려운 시기에 분양이 잘 돼서 그런 것만이 아니다. 한인이 단독 개발자로 한인은행만의 대출로 한인 건축업자와 하청업체 등 오직 한인들만의 힘으로 올림픽길에 자신의 손으로 번듯한 건물을 지었다는 자부심이 큰 탓이다.
올림픽 거리는 박 회장이 1967년 맨손으로 미국생활을 시작할 때 허허벌판이다시피 했던 곳이다. “당시엔 한인타운이라는 개념조차 없었어요. 높은 건물이라고 해봐야 2층짜리 서너 곳 정도. 3년 전 아쉽게 작고한 공주 후배이자 같은 서독광부 출신이기도 한 고 이희덕씨가 올림픽을 한인타운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며 함께 아메리칸 드림을 시작했던 곳이지요.” 박 회장은 이희덕씨가 올림픽길에 영빈관, VIP플라자 등을 세우며 이민 1세대 올드타이머로 한인타운 조성에 큰 역할을 했다고 소개했다.
“3년의 서독광부생활을 마치고 미국에 와,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기까지 올해로 꼭 55년 세월을 인정받은 듯하다고나 할까요~.”
박 회장에게 한인축제 퍼레이드의 그랜드 마샬은 그런 자리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고 초기 이민세대들과 LA한인타운을 만들고 지켜 낸 삶에 주어진 ‘훈장’과도 같다.
#. LA시장 후보, 도지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충남 공주의 가난한 농가에서 10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공주농고를 졸업했고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2년을 수료했지만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독광부를 자원했다. 막장 생활 3년을 뒤로 하고 서독에서 만난 간호사 아내와 다시 맨손으로 미국생활에 도전했다.
“목숨 걸고 지하 1000m에서도 일을 했는데, 세상에 더 못 할 일이 어딨겠어요. 용접공, 접시닦이, 공사판 막노동, 자동차 정비 등등 미국에 와서 안해 본 일 없이 험한 일은 다 하며 살았어요. 그렇게 해서 종자돈을 마련해 바디숍과 타이어숍, 주유소 등을 하면서 돈을 벌었고 부동산에 투자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죠.”
박 회장은 축제 퍼레이드의 탑차에 릭 카루소 LA시장 후보와 탑승해 공동 그랜드 마샬 역할을 하게 된다. 이철우 경상북도 도지사, 김관영 전라북도 도지사가 명예 그랜드 마샬로 뒤를 따른다.
“작고한 홍명기씨나 4년 전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기업인 김태연 회장 정도가 이민 한인 기업인으로 그랜드 마샬을 했을 정도이니, 나로서는 가문의 영광 아니겠어요.”
#. 커뮤니티 봉사와 탁월한 리더십
박 회장은 LA한인축제재단이 설립된 초창기에 이사장을 지냈다. 지금의 퍼레이드를 시작한 단체의 초기멤버였지만 그랜드 마샬의 자리는 이민 반세기가 지나서야 마침내 그 자리를 허락했다. 생업에 전력하면서도 남가주 서독동우회장, 충남공주향우회장, 코리아타운번영회 이사장, 남가주한국학원 이사장, 한미동포재단 이사장, 한인타운 시니어 커뮤니티센터 이사장 등을 하며 한인사회 발전을 위한 여러 단체의 리더로서 다양한 봉사를 했다. 특히, 남가주한국학원은 1988년, 1998년 이사장을 지낸 이후 2019년 학원사태가 난맥상을 이룰 때 ‘해결사’로 등장해 무리없이 진정시키는 리더십을 발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021년 8월 2년 임기의 이사장직을 연임받았다.
#. 근검절약과 나눔의 실천
해마다 10월이면 박 회장은 고향 공주를 방문한다. 공주지역 소년소녀가장과 장애인, 무의탁 노인들에게 생활지원금을 수여하기 위해서다. 1997년 한국에 만희복지재단을 세워 올해로 26회째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매번 20명을 선정해 100만원씩 전달한다. 올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행사를 하지 못한 24, 25회 수상자까지 총 60명을 지원할 예정이다. 기타 비영리단체 후원 등까지 더하면 이번엔 10만달러 가깝게 지출하게 된다고 박 회장은 밝혔다.
지금도 한국행 비행기를 탈 때면 이코노미석을 고집한다는 박 회장은 “조금이라도 아껴 어려운 사람 후원하고, 그 사람들 밥 한끼라도 더 먹게 해 줄 때 저는 더 행복합니다”라고 말한다.
박 회장은 8년 전부터 LA에서도 비슷한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LA에 만희코주재단을 세워, 매년 한인은 물론 타인종 저소득가정, 싱글맘, 독거노인, 장애인 50명에게 1000달러씩 5만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 6월 8일 시니어센터에서 행사를 했다. 마침 그날 행사엔 공주 출신의 전 메이저리거 박찬호씨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내년 행사부터는 박찬호씨도 후원자로 동참하기로 의견을 나눴다.
다양한 투자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커뮤니티 봉사활동 등으로 박 회장은 1975년 한국상공회의소 회장과 1978년 드메이즌 캘리포니아 주지사로부터 각각 우수기업인상을 받았다. 2012년엔 한국 고용노동부장관 공로패, 나태주 공주문화원장 감사패 등을 수상했다.
박 회장은 무일푼이다시 한 상태로 미국에 와, 1억달러 가까운 자산가로 성공했다. 하지만, 아직도 구형 벤츠를 타고 다닐 정도로 검소하며, 망구에 더 가까운 나이에도 커뮤니티 봉사에 열중하며 나누고 베품에 적극적이다.
“젊은 시절 술도 많이 먹고 마뜩지 않은 일들도 있었어요. 그런 것들을 두고 아직도 수근대는 소리가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정말 열심히 살았던 것만은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어요. 하나님께 의지한 후로는 정직하게 살았다고도 자부합니다. 그랜드 마샬은 그런 내 인생을 커뮤니티 앞에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순간이기도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족이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길 그리고, 한인사회가 이번 축제를 통해 더 화합하고 전진하는 계기가 되길 퍼레이드를 하는 동안 함께 기원할 것입니다.”
김문호 기자
※박형만 회장 프로필
▶1937년 충남 공주 출생 ▶1964년 서독광부 파견 ▶1967년 미국이민 ▶1976년 남가주 서독동우회장 ▶1978년 충남 공주향우회장 ▶1981년 코리아타운번영회 이사장 ▶1988· 1998· 2019· 2021년~현재 남가주한국학원 이사장 ▶1997년 충남 공주에 만희복지재단 설립 ▶2007년 한미동포재단 이사장 ▶2013년 한인타운 시니어 및 커뮤니티센터 이사장 ▶2014년 LA에 만희코주재단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