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야기]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는 힘
제이슨 송
뉴커버넌트 아카데미 교장
소시에 소아마비를 앓아 평생 목발을 사용해야 했던 젊은 목사 한 분을 1990년에 알게됐다. 그 분은 꽤 잘 알려진 선교단체 소속으로 사역을 해오다 십여 년 전 한 집회에서 설교를 마친 후 급사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선교사인 사모와 외동딸을 두고 갔기에 안타까웠다.
90년대 초 그분이 사역차 LA를 방문했을 때 약 2주 동안 나와 함께 지냈다. 그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나는 교회와 신앙생활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교회는 신앙적 갈등과 의심, 그리고 성경말씀의 모순 등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특히, 대다수의 교회 목사는 그저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성경을 읽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질문의 답을 얻을 것이라고 가르쳤기에 일반 성도는 아예 질문을 하지 않는다. 거의 45년 신앙생활을 해 온 이 시점, 나는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님을 인정한다. 하지만, 성경구절에 대한 구체적 질문이나 신학적 의심을 갖고 있는 이에게 그냥 성경을 많이 읽고 열심히 기도하라고 답해선 안된다. 그런 두리뭉실한 가르침은 의심이 불신으로 번지게 하는 방치라 생각한다.
아무튼 대학원시절 나는 내 자신이 실망스러웠다. 교회를 열심히 다녔고, 또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으며, 대학캠퍼스에서 성경공부도 인도했고, 또 찬양리더로서 나름대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나의 삶에 더 많은 "죄"와 어두움이 존재함을 느꼈고, "잘 나간다"란 말을 들어서인지 점점 교만해져 남 앞에서 우쭐대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왜 그럴까 궁금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자연스럽게 더 좋아지고 더 겸손해져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앞서 말한 목발 선교사에게 나의 갈등과 질문에 대해 의뢰했다,
그분은 촛불을 예로 사용해 중대한 원리를 가르쳐 주었다. 간단히 말해 어두운 방 한 가운데 촛불을 켜 놓으면 가까이 갈수록 접근하는 자가 자신의 추하고 더러운 모습을 더 많이, 더 명확히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빛이신 예수에게 더 가까이 갈수록 이전에 보고 느끼지 못했던 자신의 죄와 어두움과 교만의 존재를 인지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 원리와 성경 말씀을 인용해 왜 사도 바울이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자칭했는지 설명했고, 왜 성도가 매일 경건의 훈련을 해야하는지, 왜 매일 죄와 싸우고 회개하며 겸손하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다. 갈등하던 나에겐 참 신선하고 시원한 냉수같은 가르침이었다. 그래서 비슷한 갈등을 갖고 있는 모두, 특히 청소년과 청년에게 이 원리를 지금까지 전하고있다.
지금 우리 시대 정치인이나 또 여러 분야의 리더들은 자신의 실수나 잘못 또는 성품의 흠과 이기적 결정을 인정하지 않고 거의 100% 남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환경과 상황만 탓한다. 하지만 성경의 원리는 그런 태도나 언행은 진리와 너무 동떨어져 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 말한다. 즉, 빛과 진리에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의 한계와 문제점을 더 적나라하게 보고 느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남이나 상황을 탓하기보다 자신의 문제를 먼저 인정하고 고치려 들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쳐 보면 녀석들이 어떤 실수를 저지르거나 잘못을 범했을 때 거의 다 처음엔 자기 탓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을 본다. 어른으로서, 또 교사로서 상황을 다 파악한 뒤 던지는 질문에 그렇게 반응할 때 참 답답하고 안타깝다. 변명을 둘러대는 것이 거짓말임을 꿰뚫어보고 있는 교사나 부모는 아이가 정직히 반응하길 간절히 원한다. 정직히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고 달게 벌을 받겠다는 아이는 더 너그럽게 대해주고 더 잘 가르쳐주고 싶다. 하지만 반대로 정직하지 않은 미성숙한 아이들은 실수나 잘못에 대한 체벌은 물론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서도 벌을 줄 수밖에 없다.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정직하게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상책 임을 가르쳐야 한다. 그렇기에 올바른 교육을 통해 성품까지 다루는 학교가 필요하다. 공부만 잘 가르치는 것은 진정한 교육의 핵심을 놓치는 것이며 C.S. 루이스가 지적했 듯이 더 '교활한 악마'만 만들어낸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교육하는 사람으로서 수시로 내 자신을 돌아본다.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다. 이런 글을 쓰면서 내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만 지적하는 것이 아닌지 염려가 앞선다. 하지만, 기독교 학교의 교장으로서 학생들이 왜 정직하게 살아야 하는지, 왜 더 겸손해져야 하는지, 왜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지 가르칠 수 있어서 감사하다. 타고난 본성, 습관과 반복을 통해 좋지 않은 자세를 갖게 된 아이들을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어서 보람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