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2023 광주 비엔날레 큐레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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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2023 광주 비엔날레 큐레이팅

웹마스터

김희식

(주)건축사무소 광장 상무 



1980년대 한국에서 판화 열풍이 분 적이 있습니다. 그 즈음 동아국제, 공간국제 판화비엔날레 등이 개최되던 때였습니다. 판화미술의 보급이 활발한 계기가 되기도 했던 그 당시, ‘비엔날레’ 용어가 생소했던 필자는 신세계화랑에서 열린 판화전시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큰 맘 먹고 판화 한 작품을 구매했습니다. 회색 목제 프레임과 대형 유리 안에 담긴 흑백 판화를 집안 한 쪽 벽에 걸어 놓고 한동안 흐뭇해 하던 기억이 납니다.


비엔날레라는 용어의 의미조차 제대로 모르는 초보 미술 애호가 중의 한 사람이었던 당시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은 최근 ‘광주 비엔날레’ 전시회 때문이었습니다. 그간 범 세계적인 비엔날레(특히 베니스) 전시광고를 볼 때마다 가봤으면 하는 생각도 갖고 있었습니다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제대로 비엔날레 전시회를 가보지 못하던 터에 지난 주말 ‘광주비엔날레’를 찿았습니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본관 ‘거시기홀’(전시홀 명칭임) 전면에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Soft and Weak like Water)’라는 주제를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금년도 예술감독 큐레이터 이숙경(영국 데이트 모던 국제미술 수석 큐레이터)의 말을 빌리자면, 도가의 근본사상인 ‘도덕경 78장에 나오는 유약어수(柔弱於水, 물은 유약하지만 강한 어떤 것이라도 물을 이겨낼 수는 없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합니다. 비엔날레 전문위원인 조인호가 그간의 한국 내 비엔날레 발전과정을 짚어보는 글도 있어 이어봅니다.


“한국은 비엔날레 대국이다. 1990 중반 이후 빠르게 늘어나 어떤 곳은 도중에 문을 닫기도 했지만 대신

다른 비엔날레가 생겨나면서 현재 15개 정도가 운영되고 있다. '비엔날레란 격년제 현대미술 전시회’라는 용어 이외에는 그 성격 및 체제를 규정하는 특별한 기준이 없다. 이름도 전시내용도 낮설어 했던 비엔날레가 짧은 기간 동안 경향 각지에서 인기리에 번창하는 이 현상은 오래 전부터 문화 교류활동이 활발했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숫자로 몇 배 수준이어서 주목할 만한 한국의 문화현상이 아닐 수 없다. 1970년대 동아국제 판화 비엔날레, 80년대 공간국제판화 비엔날레, 부산 비엔날레가 모태가 된 세계청년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전주서예, 청주공예, 서울 미디어아트, 경기도자, 공주자연미술, 인천여성, 광주디자인, 안양공공예술, 대구사진, 창원조각, 대전과학, 평창, 제주 등 비엔날레가 넘쳐나고 있다.”(조인호, 큐레이팅을 말하다, 2019).


전시회장엘 들어서니, 세계각국에서 모인 79명의 작가의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술가 뿐만이 아니라 음악가, 직물 직조자, 염색, 태피스트리, 판화, 공예, 의상디자이너, 사운드엔지니어, 조명전문가, 건축드로잉, 영상, 비디오아트, 단편영화 등 다채로운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다양한 표현 매체를 통하여 각자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네 개의 소주제가 모여 대주제로 합쳐지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더군요. 주제별로 예술감독의 설명을 옮겨봅니다. 


"제1주제는 광주의 정신을 영감의 원천이자 저항과 연대의 모델로 삼음. 제2주제는 조상의 목소리와 전통에 주목하고 이를 재해석 함. 제3주제는 후기 식민지주의와 탈국가적으로 재조명 해봄, 이주(移住), 디아스포라 같은 주제와 관련한 방식에 주목하기, 제4주제 ‘행성의 시간’들은 생태와 환경에 대한 행성적 비전의 한계와 가능성을 타진해 보았음” 등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바야흐로, 지금은 '콘텐츠의 시대'라고 합니다. ‘콘텐츠의 의미가 산업을 넘어 우주적으로 사용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콘텐츠가 세상을 움직인다’라는 얘기도 있고요. 지구전체와 지구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콘텐츠가 더욱 각광을 받는 시대라고 강조하는 말들 입니다. 광주 뿐만이 아닌 제3, 제4의 K-국가대표 비엔날레가 등장하길 기대해 봅니다. 


그러자면 민중미술이나 특정 지역의 정파를 넘어선 보편적이면서도 독창적인 글로벌 콘텐츠가 필수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2023 광주 비엔날레의 큐레이터 이숙경은 콘텐츠의 깊이있고 일관된 중심잡기와 유기적인 전시 레이아웃을 통하여 역량을 발휘한 케이스라고 할수 있겠지요. 


전시장을 나설 때 느낌이랄까요, 무언가 미래의 실마리 한 부분을 찿아 낸 듯 했습니다. "진정한 도(道)는 변화하는 것”이라는 도덕경의 말을 떠 올리게 하는 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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