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 <31-2> 인생으로 울리고 음악으로 웃기는 서수남!
가수 서수남(왼쪽에서 두 번째)이 엄영수(왼쪽에서 네 번째), 팬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엄영수 제공
#. 속더라도 믿어보자. 전설의 명콤비 부활하리라!
서수남 하청일 듀엣 20주년 기념 콘서트를 끝낸 1988년께. 하청일은 뉴코아에 스포츠용품 체육사를 차리고 전국 판매망을 구축하여 프로야구 프로축구 붐을 타고 번창일로에 놓여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서수남 하청일은 팔도유람으로 전국을 돌며 구경 못간 사람들에게 여행을 시켜 드렸다. 동물농장으로 남녀노소 보는 사람마다 즐겁게 해드렸다. "싱글벙글 웃어 주세요~ 화내지 말고~." 국민 웃김이 역할을 하며 밤새도록 무대를 누볐다. 그런데 날이 밝자 천지개벽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청일이 예고없이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 사랑하는 사람 인생파트너 음악동지 운명공동체 분신의 증발을 믿을 수 없다. 맨붕에 빠진 서수남은 아무 것도 모른다. 그냥 이런 현실에 갇혔다.
일류가수, 인기절정의 사업가,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사라졌을 때 그 심정은 어떠했을까?
미스테리다. 영수 생각이다. 연예인은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진다. 뉴코아 매장에 가면 손님이 너무 많았다. 물건이 없어서 못 판다. 그럼 문제가 뭔가? 1983년 MBC 이종환(DJ)의 달려라 팔도강산 라디오 프로에서 1주일에 한 번씩 야구계 소식을 전해줄 때 같이 출연했었다. 친절하고 마음씨 좋은 동네 형님이었다. 순하고 착하고 조용한 선배님이었다. 사업 안하면 천번만번 성공할 분이다.
하늘이 맺어준 천상천하 최고의 명콤비, 웃음 전도사, 희망천사, 어린이의 우상, 만년 미소년…. 한꺼번에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그런데 연좌제란 게 있다. 누가 조금 잘 못하면 그 문중, 그동네까지 물고 들어가 개인의 실수를 대중화시켜 밑바닥까지 끌어 내려야 직성이 풀린다. 그때 그 시절에 그랬다는 전설따라 삼만리 같은 이야기~.
#. 음악 공백기 있어도 인생 공백기는 없다
서수남 하청일의 인기폭발! 해 뜨듯~ 달 가듯~ 왜? 볼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텍사스 목장 카우보이 의상에 기타를 걸치고 나면 우선 무대 빈공간이 꽉 찬다. 몸집도 크다. 게다가 2인분이다. 컨트리송, 포크송을 들려주고 어린이로부터 어른 노인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몰이를 했다.
TV코미디의 거장 김경태 PD에 발탁돼 웃으면 복이와요에 고정출연한 것이 웃기는 가수, 웃음을 주는 가수를 만들었다. 번안가요를 발표하고 가사를 뒤짚었다 폈다 하는 그들 공연에서 웃음을 본다. 몸값이 뛰었다. 이렇게 따져도(몸) 저렇게 따져도(인기) 대형가수가 분명하다.
들을거리는 또 어떤가? 신나는 기타연주, 동물농장 식구들 성대모사로 지지계층이 넓다. 어쨌든 공연은 관객이 많으면 성공이다. 한이 맺히고 슬픔이 가득한 노래가 난무할 때 밝고 명랑한 활기찬 노래는 신선함을 주었다.
서양 음악에 한국적 가사를 붙여 만든 코믹송은 듣는 이를 즐겁게 했고 내일의 활력소가 되었다.
서수남 하청일은 그들이 있는 곳이 공연무대가 아니라 장날 장마당을 만든다. 그들은 잔치판을 벌려 우리에게 풍요로움을 느끼게 하였고 서로가 이웃이며 가족임을 일깨워 주었다. 문득 그들이 불렀던 과수원길이 듣고 싶어진다.
서수남의 회고. "영수야 인기란 게 영원할 순 없드라. 좋은 시절이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아. 앞날은 그 누구도 몰라! 어떤 가수를 만나도 하청일 이상은 없드라고. 망연자실 하진 않으려고 해. 음악 공백기는 오겠지만 내 인생의 공백기는 없어!
#. 인생은 반드시 다음 편이 더 재미있다
방송도 무대공연도 모두 내려놨다. 압구정동에 학생 기타학원을 차렸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걸까. 기타가 대세인 시대가 왔다. 청년문화의 3대 요소 청바지, 생맥주, 기타. 기타를 칠 줄 알면 악단을 이끌고 다니는 것과 같다. 음악을 자급자족하기 위해 기타를 배웠다. 학생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데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학부형들이 우리 노래 좀 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어머니 노래교실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겼다. 백화점문화센터에서 주문이 쇄도한다. 서수남 주부가요교실이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에 만들어진다. 어머니 노래교실이 더 커졌다.
지방에도 파급돼다. 빨리 확산된 이유는 일본의 노래방 반주기 개발 때문이었다. 일본이 우리보다 10년 앞서서 반주기를 만들어 냈다. 일본서 활동하던 가요 천재 작곡가 길옥윤 선생이 일본 반주기 안에 한국의 가요 명곡 150곡을 수록해 놓은 게 있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기타학원부터 다시 시작한 것이 주부가요교실로 대히트를 치면서 인생반전에 성공했다.
방송도 업소도 이벤트도 어린이 행사도 옛 명성을 회복했다. 역시 서수남은 변함이 없었다. 실력으로 말한다. 원래 남들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독보적인 독창성이 있었다. 거기에 리얼리티 인생스토리가 입혀지니 노래와 인생을 위한 교과서가 아닌가?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은 시련과 역경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제 닥쳐올 지 아무도 모르지만 없을 수는 없다. 서수남의 위대한 인생스토리도 계속 이어져 갈 것이다. 불행이 왔을 때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는다. 사력을 다해 스스로 극복하고 밝게 웃으며 아무 일 없다는 듯 나타난다. 코믹송의 원조답게 마무리는 언제나 웃음천국이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사진작가로서 비껴간다. 홀로 자연 속을 떠돌며 인생의 고뇌를 사진작품에 담아 예술로 풀어낸다. 벽에 부딪히면 잠시 침묵을 지키기도 하고 멀리 떠나있을 줄도 안다. 이것이 지혜다. 일어나는 모든 일에 연연해 하지 말자!
인생파트너, 운명공동체, 사랑하는 사람, 그리워하는 사람, 나의 전부인 사람과 멀어지는 일이 연속적으로 닥친다 해도 세상에 없는 드라마가 여기 있구나! 사람보다 못한 하늘이 여기 있구나! 깨달음 하나를 갖고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 세월과 기타와 노래와 웃음으로 툭툭 털어내고 다시 일어선다.
음악이 있는 한 가수 서수남은 불사조다.
이제 우리는 인생 삼모작을 기대해 보자, 인생은 반드시 다음 편이 더 재미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