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행복칼럼] 삶이 던지는 질문에...
월드쉐어USA 대표
해비타트 운동으로 잘 알려진 전 대통령 지미 카터는 자신의 저서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자신의 좌우명이라고 했다. 그러나 카터는 원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카터가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은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리커버 해군제독과의 만남에서 비롯했다.
리커버 제독은 카터 소위에게 여러 질문을 했다. 전술 전략과 군인의 자세에 관해 아주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졌고 카터 소위는 전전긍긍했다. 제독은 갑자기 카터의 사관생도 생활과 졸업성적을 물었다. 카터는 스스로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자신있게 성적과 점수를 말했다.
뽐내듯 대답하는 카터에게 리커버 제독은 “그 성적이 최선을 다한 결과인가?”라고 물었다. 카터는 당황해서 “최선을 다하지는 못했습니다”라며 얼버무렸다. 그러자 제독은 또 물었다.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이 질문에 카터는 도전을 받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후 “최선을 다하자!”가 그의 생활 모토가 되었고 지금도 그는 최선의 삶을 산다.
우리는 일생동안 많은 질문을 만난다. 사실 질문은 학교의 교과과정이다. 각 급 학교 입시, 그리고 학력평가를 위한 시험들은 물론이고 수업과 강의를 통해서 수 많은 선생님들의 질문을 받는다. 질문의 수준과 난이도가 학생의 학업 성취도, 성장 그리고 성숙을 나타낸다.
사실 우리는 질문으로 성장한다.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질문으로 제자들을 교육시킨 산파술로 유명하다. 예수님도 질문하셨다. 스탠 거쓰리는 그의 저서에서 예수님께서 305회 질문하셨다고 밝힌다. 예수님이 던지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인생은 끊임없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 차례 삶이 던지는 질문들을 만난다. 때로는 이웃이 묻고, 때로는 자신이 묻고, 때로는 시대와 역사가 묻는다. 삶이 질문을 던질 때 우리는 대답을 해야 한다. 인생의 질문을 생각할 때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는 질문의 종류다. 질문이 삶의 수준을 나타낸다. 초등학생과 대학생 질문은 다르다. 품격 있는 질문을 가진 인생이 품격 있는 인생이다. 케네디는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조국이 무엇을 해줄 것 인가를 묻지 말고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으라고 일갈했다. 질문이 중요하다. 둘째는 질문에 올바르게 답하는 것이 중요하다. 삶의 질문에 대답이 인생승패를 좌우한다. 구한말에 엘리트들은 시대의 질문에 반응했다. 이완용과 을사오적의 반응은 재물과 부귀영화였고, 서재필, 김구, 이승만은 애국과 애족을 대답했다.
이완용은 수재였다. 과거시험에 합격했고 탁월한 영어실력으로 미주공사를 두 번이나 지냈다. 그는 성균관 대제학(총장)을 지냈고, 학부대신 시절 공교육을 도입했다. 그는 독립협회 결성에 동참했고 2대 회장으로 취임하며 명연설을 남겼다. 그러나 그는 시대와 역사가 던지는 질문에 비겁했고 재물과 권세를 택했다. 그 결과 탁월했던 이완용은 매국노로 역사에 남았다.
반면 이승만은 과거시험에 수차례 낙방했고 관직에 오르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는 시대가 던지는 질문에 애국과 애족으로 대답하며 건국을 했다. 이승만도 실수했고 대답이 시원찮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대와 역사의 질문에 그는 자유, 민주, 애국으로 대답했고 건국을 했다. 오늘 우리도 질문을 듣는다. 이승만의 길이냐? 이완용의 길이냐? 찌질하게 살 것이냐? 대범하게 살 것이냐? 이 질문들에 대한 우리 대답이 우리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