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태극문양(紋樣)과 6년만의 외출
대니얼 김
제너럴 컨트랙터
어쩌다 해외여행을 떠날 때 나름 선호하는 ‘여행의 技術’이 있다. 행선지 국적의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이를테면, LA에서 싱가포르를 방문할 경우 싱가포르항공을 이용한다. 방문국 국적기를 타면 일찌감치 목적지에 도착한 듯한 흥취가 느껴지는 듯하다. 또한 해당 국적기들의 自國 내 출도착 스케줄이 이동에 편리한 점도 포함된다.
한국방문 시 국적 항공편을 선호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특히 이민자로 살고 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런 즐거움과 반가움이 배가(倍加) 될 것이다. 필자는 공사현장이 어디냐에 따라서 오고가는 프리웨이의 방향이 자주 바뀌는 편이다. 웨스트LA 쪽 공사현장으로 출근할 때의 일이다. 목적지까지 가려면 매일 아침 6시30분 전후하여 405번 프리웨이 인근의 LA국제공항을 지난다. 그때마다 항공기들은 운전석 머리 위로 내려앉기라도 하듯 거대한 동체(胴體)로 나즈막히 다가온다.
그 중 한 대가 유난히 눈길을 끌 때가 있다. 하늘색 대한항공 여객기다. 날개 끄트머리에는 해당 항공사의 심볼인 태극마크를 달고 있다. 괜히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아침 저녁으로 110번 프리웨이 도로변 LA다운타운 지역을 통과한다. 이럴때면 초고층 건물 한 棟이 확 눈에 띈다. KAL 윌셔빌딩이다. 빌딩 꼭대기에 낯익은 디지털 전광판이 눈에 띈다. 청적색(靑赤色) 태극문양이다. 뒤로 보이는 샌게이브리얼 산맥 스카이라인과 잘 어울린다.
얼마 전 ‘LA취항 50주년을 맞은 대한항공’이라는 보도를 보면서 떠오른 얼굴이 있다. 창업주 조중훈 회장이다. 한국의 기업형태를 두고 한동안 국가주도 정책, 문어발 대기업 편중의 경제구조 등 여론의 날 센 비판이 있었다. 반면, 그래도 짧은 기간 내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유수한 대기업들의 선택과 집중을 통한 특화산업구조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 조중훈 회장은 육로, 해상, 하늘길을 막론하고 운송, 물류 및 교육사업에 주력했다. "개인보다는 國益을 기업이념으로 삼았다”는 조 회장, 그래서인지 회사그룹명도 ‘韓進’(한민족의 전진을 뜻하는 의미의 이니셜)으로 정했다고 전해진다. '민족의 날개, 우리의 날개’라는 출발 당시 캐치프레이즈와는 달리, 달랑 4명 정원인 소형 ’세스나’ 한 대로 시작한 기업이 이제는 ‘색동의 날개’를 내건 아시아나항공과 사실상 합병으로 세계 초대형 항공사가 됐다.
대한항공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 70년대 중 후반부터 중동산유국으로 한국 기술자들이 대거 해외로 진출할 때의 일이다. 당시 그 지역에는 국적기 운행이 안되던 때다. 홍콩 국적의 캐세이퍼시픽을 주로 이용했다. 사우디 리야드를 가기 위해서 필자는 김포-홍콩-바레인을 경유하며 꼬박 3일을 가야 했다. 그 후로 몇 해 지나서 서울 출발 리야드 도착, 대한항공 747 점보기 직항 왕복노선이 생겼다. 휴가차 리야드공항에서 서울행 비행기에 오를 때의 감격은 지금도 새롭다.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전환하면서 한국을 다녀오는 이웃들이 많아졌다. 두 달 전 발권한 e-Ticket 관련해 항공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출발시간이 10분 늦어졌다는 사전통보다. 6년만의 외출을 시도하는 필자뿐이겠는가. 모국방문은 여러 교민들에게 언제나 가슴을 설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