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행복칼럼] 우크라이나 군종목사 전사 소식
지루한 전쟁으로 지쳐가던 2차 대전 말엽, 미국사회는 중요한 두 사건을 맞는다. 이 두 사건으로 미국사회 반전운동을 잠재우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훗날 알려진 바에 의하면 펜타곤 심리전 사령부에서는 언론사에 협조를 얻어 이 두 사건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고 한다.
긴 전쟁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전선으로 징집되고 있었다. 국민들 시선을 의식해 심야열차로 장정들을 호송했는데 기차역에서 밤에 뜨거운 초코를 나눠주는 노신사가 있었다. 어느 날 밤 카바이드 불빛에 비친 노신사 얼굴을 본 한 젊은이가 “각하! 각하가 웬일이십니까?” 했다. 그 노신사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다.
전쟁을 수행해야 했기에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보내야 했지만 대통령 마음은 아팠다. 그래서 그는 아무도 몰래 초코통을 들고 전선으로 가는 젊은이들을 위문했던 것이다. 이 사실이 미국에 알려지자 미군 사기는 올랐고, 반전운동은 누그려졌으며 그는 유일한 미국 4선 대통령이 되었다.
또 한 사건이 있다. 1943년 2월 3일 밤, 미군 수송선 돌체스터호가 독일군 어뢰를 맞고 침몰한다. 이때 4명의 군종장교들은 병사들 대피를 도왔다. 네 명의 군종장교들은 구명조끼가 없는 병사들에게 자신들의 구명조끼를 벗어 주고 얼음장같이 차가운 대서양에 잠겼다.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그들의 장엄한 죽음은 큰 감동으로 미국사회를 흔들었고 2차 대전의 승전요인이 되었다. 군종장교들을 ‘불멸의 군목들’이라 부르고, 미 육군 군종학교에서는 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가르친다.
최근 세 분의 우크라이나 군종목사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네바협정(Geneva Convention)에 따라 군종목사는 비전투요원이고 후방에 위치한다. 그런데 군종목사가 전사했단다. 전쟁의 치열함과 러시아군의 무도함을 웅변한다. 이 소식을 전하며 키미치 목사는 울었고 필자도 울었다.
키미치 목사를 1990년대 후반에 만났다. 당시 그는 일반 장교인데 침례교 목사였다. 그가 우크라이나 군종제도 도입 책임자였다. 필자는 한국 군종목사로 또 세계복음주의 군종목사회(IAEC) 이사로 우크라이나 군종병과 창설을 자문했다.
1990년대에 함께 일하며 친구가 되었지만, 각자가 바쁘게 살면서 소원해졌다. 우리는 전역 후 각자의 길을 걸으며 종종 소식을 전해 듣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 전쟁 소식을 듣고 키미치 목사를 생각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다 키미치 목사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군종목사단과 그 난민지원을 돕기로 했고 지금까지 힘써 돕고 있다. 보람을 느낀다.
우크라이나 경제력과 군사력이 한국의 6분의1 정도다. 경제력이 군사력이니 우크라이나 무기체계로 군사강국 러시아를 상대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군사 전문가들은 곧 함락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이런 예상을 깬 우크라이나의 담대한 저항에 온 세계가 놀라고 있다.
결사항전 의지를 불태우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참전을 위해 늘어선 우크라이나 국민의 귀국 행렬은 세계를 감동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선전하고 있다. 대통령이 감동을 주고 군종목사들의 죽음이 감동을 주는 우크라이나 전황이 궁금해진다. 장비와 무기체계의 열세를 극복하고 우크라이나가 이기는 전쟁이 되었으면 좋겠다. 세 분의 군종목사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