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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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관(釜關)훼리, 2023

 

며칠 간의 휴가 중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벳부에서 하루 묶고, 오이타에서 오전 7시10분에 탑승한 구마모토행 규슈 횡단 JR열차에 탑승, 2시간 만에 아소산역에 내렸습니다. 산정(山頂)에는 칼데라 화산이 지금도 연기를 내뿜고, 화산 주변 분화구에서는 매케한 연기도 피어 오릅니다. 

매년 봄이면 현지 주민들이 일부러 불로 태운다는 초원 산등성이와 쿠사센리(草千里) 코스를 서너 시간 걸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부산항을 출발, 시모노세키항 왕복 부관훼리(옛 ‘관부연락선’)를 선택했습니다. 승선 시간을 앞두고 부산항 인근의 보수동 책방 거리를 찿아 갔습니다. 절판된 책을 구하려구요. 이병주 소설 ’관부연락선’입니다. 요즈음 대형 서점이나 웬만한 헌 책방에서도 구하기 힘든 책을 가까스로 찾았습니다. 

기왕 부관훼리를 타고 가는 김에 하룻밤 읽고 싶었던 책이었죠. 코로나 이전 만해도 항공으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곳을 밤새도록 가야 하나 하는 부담에 생각도 안했던 배 편을 택했습니다. 나름 이유가 있었지요. 얼마 전 집에서 서랍 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서류 때문이었습니다. 오래된 제 가족의 호적 서류입니다. 

조부모를 위시하여 가족 전원의 이름과 출생 기록이 순서대로 기록된 등본입니다. 부모님은 두 분 모두 1910년생으로 일제 강점기, 8·15 해방, 6·25 등 근대화의 격랑기를 겪은 세대지요. 등본 상단을 보니 맏형은 6·25 때 ‘○○전투에서 전사’, 1942년생 누님은 세 형과는 달리 일본 ‘오사카府’출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수십 년이 지난 가족사가 담긴 서류를 보니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 시절, 부친은 30, 40대 가장 시절 왜 가족을 데리고 왜 일본으로 만주로 떠났을까, 그 곳에서는 어떠한 생활을 했을까 떠올려 보게 됩니다. 일찍 작고하신 부친과는 속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으므로 잊고 지낸 세월이 길기도 했습니다.(훗날 집안 어른들의 얘기로는 가족들이 만주 지역까지도 왕래했다고 함).

현재 부관훼리의 전신인 당시의 ‘관부연락선’을 타고 왕래하셨겠지, 역사의 격랑기를 부대끼며 사셨을 부친에 대한 회상과 함께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현해탄 항로를 오가는 선편을 타고 가보리라 결심하기에 이르렀던 겁니다. 평소 필자는 이병주 선생의 소설을 좋아합니다. 개인의 서사를 당시 역사적 배경을 최대한 팩트에 가깝게 그려낸다는 점과 담백한 문체가 감정을 잡아챘기 때문이죠. 

”관부연락선은 하나의 상징적 통로다. 이것이 상징하는 뜻을 통해서 한반도와 일본과의 관계를 내 나름으로 파악하고 정리해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곳은 도버에서 칼레로 오는 배 위에서였다. 관부연락선이 처음 취항한 것은 1905년 9월 25일이다. 최초의 연락선 이름은 이키마루, 1692톤급의 신조선이다. 매일1회 부산, 시모노세키 양쪽에서 출항했다. 한반도를 두고 러시아··일본 삼국이 각기 자국 세력권 속에 넣으려고 각축전을 벌일 때다. 청-러 전쟁에서 일본은 득세했다. 그러니 관부연락선은 이 전승(戰勝)의 영광, 일본의 대륙 경영의 영광스러운 통로로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 배를 타고 일본인은 어떻게 하면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한국으로 건너온 일본인들이 많았다. 

반면에 한국인들은 일본으로 건너가는 일부 유학생들이나 사업장, 일자리를 찿아 떠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관부연락선 134쪽,동아출판사) '또한 대사의 격량을 읽는 문학의 시각’이라는 작품 해설에서 평론가 김종회는 “이병주는 당대의 한국 문학에서 보기 드문 면모를 남긴 인물이다. 그의 인생 유전은 결코 한두 마디의 언사로 가볍게 정의할 수 없는 엄청난 근대사의 파도에 실려왔다. 일제 시대부터 해방 공간을 거쳐, 남과 북의 대립, 6·25 동란등 온갖 파란만장한 역사의 굴곡이 융기하고 침몰하던 격동기였다”라고도 했습니다.(관부연락선의 줄거리이기도 함). 평범했던 한 가족의 부친을 포함, 당시 사업장이나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 혹은 유학생들 모두가 이국선(異國船)인 관부연락선을 타고 그들도 인생유랑(流浪)을 떠났을 것입니다. 

부산항으로 되돌아 오던 날, 한밤중 갑판에 나와 현해탄을 바라봤습니다. 스무 살 나이로 전사한 맏아들을 가슴에 묻고 사셨을 아버지, 뿐만 아니라 질곡의 파고(波高)를 넘어 타국을 떠돌며 살아냈던 당시 이웃 어르신들의 세월을 생각하게 됩니다. 돌아보는 일과 내다보는 일은 언제나 한 몸으로 얽혀 있다고 했던가요? 부산항으로 되돌아오던 아침, 떠오르는 일출과 함께 뚜우 울리는 뱃고동 소리가 하선을 알립니다. 2023년, 78주년을 맞은 광복절과 역사의 변곡점들, 그리고 가족의 의미와 함께 오늘을 바라보며, 내일을 내다보는 소중한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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