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에이징 착각’이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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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에이징 착각’이 필요한 때

웹마스터

김희식

(주)건축사무소 광장 상무 


일본 이바라키 현 쓰쿠바시의 투표방식 발표가 눈길을 끕니다. 다름아닌 내년에 열릴 시장 및 시의원 선거 때 초고령자들의 투표율을 높이려고 유권자의 집 앞에서도 투표할 수 있는 자택투표제를 채택한다는 거죠. 투표소가 언덕에 있거나 집에서 걸어가기엔 너무 멀어 유권자의 집까지 찿아가는 일종의 ‘Door To Door 투표서비스’방식인 셈입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왜 나이드신 분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냐? 남은 기대수명에 따라 청년과 노인의 투표권 경중을 달리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냐”라는 취지의 발언이 나온 뒤, 고령층의 불만이 나오다 보니, 이웃나라 소식이 관심있게 다가옵니다.


최근에 발생한 또 다른 사건이 있습니다.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 가해자의 발언입니다. 미래가 짧은 (노인)분이라고 말한 정치인의 발언과는 분명 다른 경우지만 ‘혐오와 차별의 시각’에서는 비슷한 사건으로 보인다는 의견입니다.(박성원 '노인의 미래’).


여름 휴가철이면 여행지로 떠나기 전, 책 한두 권 베낭에 넣고 출발합니다만, 이번에 집어든 책이 있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착각'(베카 레비 著, 김효정譯)입니다. '몸과 마음에 대한 통념을 부수는 에이징 심리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예일대 교수인 저자는 대학졸업 직후, 노인병동에서 일하는 동안 노인환자와의 대화, 그들이 받는 치료, 가족에 대한 감정 등 배후 사정을 알아가면서 노인의 뇌와 노인들의 연령의식 등에 주목했습니다. 누구나

우려하는 질문, 나이가 들고 늙어가면서 노인과의 관계, 정신건강과 신체상태, 우리가 속한 문화집단의

배경, 인간관계 등 다양하고 미묘한 상호작용의 영향 등에 대해 돌아보면서 노화현상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갖는 것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짚어 냈습니다.


오랜만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단숨에 읽어나간 책 중의 하나였죠. 저자는 잘 늙어가기 위해서 ‘연령인식’을 강조합니다. 연령의식이란 우리가 고령자에게 나이에 따라 어떻게 행동하기를 기대하는지를 담은 심적지도라고 합니다. 우리 머릿 속의 그림을 담은 이 정신지도는 우리가 집단 속에서 그 지도에 해당하는 구성원을 발견할 때 펼쳐진다고 합니다. 연령인식과 연령에 걸맞는 행동에 대한 기대가 그토록 막강한 이유는 우리가 만년을 경험하는 방식을 규정하기 때문이겠죠. 


저자에 의하면 연령인식에는 세 가지 경로가 있는데, 첫 번째는 심리경로(한 가지 예는 부정적인 연령의식을 흡수한 노인들의 자존감이 낮아지는 현상), 두 번째는 행동경로(부정적인 연령의식을 흡수한 고령자들이 만년에는 건강이 쇠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운명론적 태도를 취하기 시작하면서 나타남), 세 번째는 생체경로(부정적인 연령의식이 호르몬과 혈액 속의 C반응성 단백질과 같은 스트레스의 생체표시를 증가시킬 수 있음) 등을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요소들이 바로 불행을 가져오는 삼중작용이라고도 하더군요.


한편으로 '실제 나이보다 젊다고 느끼는 사람, 뇌도 덜 늙는다’라는 이론도 있습니다. 몇 해 전, 서울대 심리학과 최진영 교수 연구팀이 59~84세 성인남녀 68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 입니다. 주관적 연령이 뇌의 노화와 관련, 자신의 나이를 실제보다 어리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뇌는 실제보다 노화가 덜 진행됐음을 확인했었지요.(국제학술지 ‘프론티어스 인 에이징,Frontier in Aging Neuroscience 2019’에 발표). 그 중 일부 내용입니다. 


"조사대상자에게 ‘난 내 실제 나이보다 어리다’와 ‘난 내 나이 실제와 같다’, '난 내 실제 나이보다 나이가 많다’라는 세 가지 답변 중에서 선택하게 한 후 이들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해 세 집단 간 비교를 하였다. 그 결과, 주관적 연령을 어리게 지각하는 참가자들은 청력과 감정,의사결정 그리고, 자기통제와 관련한 뇌 부위의 회백질 양이 비교집단보다 더 많으며, 기억력이 더 좋고 우울해질 가능성도 낮은 것을 확인했다. 우리는 실제연령보다 스스로 더 어리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더 어린 뇌의 구조적 특성을 갖고 있음을 알아냈다. 실제 나이보다 더 나이들었다고 느낀다면 뇌의 노화를 가져올 수 있는 생활방식과 습관 그리고, 신체활동을 점검하고 뇌 건강을 더 잘 관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연령차별과 노인폄하가 흔한 일이 되어버린 탓인지, 위에서 언급한 ‘부정적 삼중작용(심리, 행동, 생체)’이론이나, ‘실제 나이보다 어리다는 에이징 착각’ 연구결과가 타당하게 들리는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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