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한인화가 2人
김희식
(주)건축사무소 광장 상무
요즘 뉴욕 록펠러센터에서 ‘기원(Origin), 출현(Emergence), 귀환(Return)’이라는 타이틀로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화가가 있습니다. 진 마이어스입니다. 그는 인천에서 태어나 네 살 때 미네소타주 가정에 입양된 입양아입니다. 그간 뉴욕, 파리, 홍콩 등 세계16개국을 돌며 작품활동을 하고 나서, 몇 해 전부터는 한국인 아내와 함께 서울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번 록펠러 전시회는 아트페어,경매 등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국 대표작가 박서보, 이 배 등과 함께 열리고 있는 기획전입니다. “저는 출생기록을 가져본 적이 없지만 제 그림은 어떻게 태어났는지 기록하고 싶었어요. 입양아로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 늘 자신을 따라 다녔습니다. 애당초 그림을 시작한 동기도 한국이라는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 였어요. 미국에 입양되기 전 고아원에서도 항상 그림을 그리곤 했죠.그림은 제가 한국을 기억하는 방법이었습니다”라고 그는 언론과 인터뷰에서도 그간의 심경을 털어놓았습니다.
보도된 그의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뭔가 색다른 화풍이었습니다. 잡지에 나온 사진이나 형상을 포토샵으로 왜곡한 뒤 영상화하여 캔버스에 그려내는 방식입니다. 마이어스 본인의 설명에 의하면 전형적인 회화작업에서 벗어나 포토샵에서 그 답을 찿았다고 합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의 그림을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그 안에 숨겨진 QR코드를 통해 붓의 터치와 스케치를 증강현실(AR)로 볼 수도 있고,한 겹 한 겹 덧칠한 물감층이 3차원(3D) 공간으로 피드백도 가능합니다. 종래의 회화방식에다 디지털까지 동원한 진화된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의 화가가 있습니다. 미국서 태어난 동포 2세 작가 마이크 리 입니다. 지금 서울 성북동 제이슨함갤러리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80년대 초 부모님을 따라 LA 인근에 정착한 그의 작품에서 특이한 점이 발견됩니다. 가족 앨범에서 자신의 개인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을 작품의 모티브로 삼은 것입니다. 전업화가로 전향하기 전, 그는 영화사(루카스와 20세기 폭스사)에서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로 십 수년 일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CG(컴퓨터 그래픽)를 통한 효과 등을 도입하여 다양한 작품을 재구성했더군요.
잘 보이지 않는 붓의 질감과 흑백 그라데이션(Gradation) 효과를 통하여 밝은 부분부터 어두운 부분까지 변화해 가는 농도의 단계를 보여주었습니다. 붓과 유화물감으로 그렸지만 때로는 컴퓨터 그림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착시(錯視)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의 작품 중 ‘베테랑’은 몇 년 전 타계한 그의 할아버지 사진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다름 아닌 6·25 참전용사였던 할아버지가 즐겨 입었던 제복차림의 사진입니다. 지금의 자신을 있도록 한 뿌리, 근원을 갖게 해 준 사진이라는 거죠. 그러나 동시에 낯선 존재로 보이기도 했겠지요.
“할아버지의 사진을 처음 봤을 때는 멋지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점차 여러 상념에 잡히게 했다. 할아버지가 보여준 모습은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술회했습니다. 아마도 희망인지, 공포인지 모를 얼굴 모습을 보면서 이민자 가정의 기억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도 나와 있습니다.
두 화가의 그림을 통해서 느끼는 소회가 있습니다. 한국인, 이산자(離散者), 경계인, 때로는 그림자 없는 삶의 기록등 디아스포라의 원형질(原形質)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앞서 말한 진 마이어스는 입양아로서의 존재감과 출생, 성장하기까지 지난한 과거를 그림으로 회복되어 가는 과정을 담아낸 듯 합니다. 후자인 마이크 리는 빛 바랜 이민가족사를 담은 사진첩에서 교민의 다양한 내면들을 표현했다고 할수 있겠지요.
두 화가 모두 디지털 기법을 응용하여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정현종의 환대) 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두 사람의 위상과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