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행복칼럼] 나눔을 잃어버린 현대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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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의 행복칼럼] 나눔을 잃어버린 현대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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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교회가 위기를 맞을 때마다 들렸던 구호다. 초대교회는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건강한 교회다. 초대교회는 새생명의 탄생과 변화의 역사가 왕성했던 강력한 교회다. 초대교회는 아주 작은 공동체였지만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를 정복했다. 이는 로마 황실과 사회에 감동을 주었다는 말이다. 

   

초대교회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초대교회는 어떻게 세상을 감동하게 했을까? 사도행전은 초대교회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한다. 성령님 강림으로 시작된 초대교회는 하나님을 찬미하는 등 하나님을 잘 섬겼다. 아울러 초대교회는 사람들을 잘 섬겼다. 초대교회는 섬김으로 세상을 정복했다.

   

초대교회는 구제(Almsgiving)사역 즉 나눔사역으로 사람을 섬겼다. 성령강림 직후의 교회활동을 소개하면서 사도행전 2장 44~45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성령충만한 초대교회는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필요한 사람)에게 나누(Share)었다. 이런 초대교회의 나눔과 섬김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4장에서 위기를 맞은 교회가 한마음으로 기도하다 성령 충만을 경험한다. 그때 교회는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주장하는 이가 없었다. 이때 바나바는 밭을 팔아 통 큰 나눔에 동참했고 예루살렘 교회 나눔사역의 모델이 되었다. 

   

활발한 나눔이 교회 친교를 강화했고 공동체를 건강하게 했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었다. 활발한 나눔의 부작용으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과 히브리파와 헬라파의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건강한 나눔을 위해 새로운 직임인 집사제도가 등장했다. 나눔활동은 초대교회의 중요한 사역이었다. 나눔사역을 살피지 않고 초대교회를 설명하기 어렵다. 

   

사도행전은 초대교회의 다양한 나눔을 소개하고 있다. 개인이 소유를 팔아 사도들에게 맡기면 교회 공동체 안에서 나눔을 실천했고, 교회는 과부를 돌보기도 했고 궁핍한 성도를 돌보기도 했다. 안디옥교회가 흉년을 만난 예루살렘 교회를 대상으로 나눔을 실천했던 것처럼 교회가 교회를 도왔다.

   

사도행전 초대교회의 나눔을 생각할 때 주목해야 할 사실은 나눔이 성령강림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현대교회가 성령운동을 도모하면서 나눔의 가치를 간과하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성령충만한 예루살렘 교회가 보여준 건강한 신앙생활에는 건강한 나눔이 있었다. 

   

건강한 사도행전 초대교회는 나눔의 실천으로 확장과 성장을 거듭했다. 탁월한 리더십과 신학으로 건강한 교회를 세웠던 교부들은 강력하게 나눔(구제)사역을 강조했다. 성 어거스틴, 암브로시우스, 크리소스톰 등등은 구제가 없는 기도는 공허하다고 했다. 이들은 전 재산을 팔아 나눔을 실천한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다. 

   

성령충만한 교회는 나누는 교회다. 성령충만한 성도는 나누는 성도다. 성령강림으로 나타난 현상인 나눔으로 초대교회가 세상을 섬겼고 결국 로마와 세상을 정복했다. 반면에 나눔을 상실한 현대교회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간다. 성령의 능력으로 나눔을 실천했던 초대교회를 배우는 현대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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