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잡으려고 입국자 괴롭히는 ‘음성 확인서’
입국 전후 검사, OECD 중 한국 뿐…
음성 잘나오는 현지 검사소 입소문
검사소 따라 양성이 음성 바뀌기도
귀국후 하루내 PCR 검사도 받아야
회사 출장 때문에 베트남 하노이에 열흘간 머물렀던 이모(37)씨는 지난 26일 현지 병원에서 발급받은 ‘코로나 음성 확인서’에 ‘문제’가 발견돼 출장 일정을 하루 연장해야 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면 출발일 전 48시간 내에 PCR 검사 또는 신속항원검사를 한 뒤 발급받은 ‘음성 확인서’를 항공사에 보여줘야 하는데 이씨의 ‘음성 확인서’에 ‘발급 일자’가 누락돼 있었던 것이다.
항공권 발권 직전에 이를 알게 된 이씨는 비행편을 변경하고 1시간 거리의 하노이 시내로 돌아가 다시 검사를 받아야 했다. 3시간 줄을 서서 신속항원검사를 받았던 이씨는 다음 날 오후 1시쯤 다시 발급받은 ‘음성 확인서’를 갖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이씨는 검사비 11만원에 비행편 변경 비용, 추가 호텔 숙박비까지 51만원 정도를 더 썼다고 한다.
대부분의 국가가 ‘위드 코로나’로 전환한 가운데, 한국은 입국자에게 코로나 음성 확인서를 요구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한 곳이 됐다. 지난 7월 기준으로, OECD 38국 가운데 입국 전후 음성 확인서 제출을 모두 요구하는 나라는 한국 뿐이다. 일본은 ‘입국 전 검사’만, 칠레와 뉴질랜드는 ‘입국 후 검사’만 요구한다. 나머지 미국, 프랑스 등 34국은 입국자에 대한 코로나 검사 규정을 모두 없앴다.
방역 당국은 해외로부터의 코로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최근 여행 카페 등에서는 실제 코로나에 감염됐는지와 상관없이 현지에서 ‘음성 확인서’를 손쉽게 받을 수 있는 노하우가 공유되고 있다. 가령, 유럽의 A 도시의 B 검사소의 경우 ‘검체 채취 때 면봉을 깊이 넣지 않는다’는 후기를 올리는 식이다.
최근 유럽 여행을 갔다 온 이모(23)씨는 귀국 이틀 전 현지에서 실시한 PCR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 귀국 전까지 ‘음성 확인서’가 필요했던 그는 다음날 검사소 3곳을 돌아다니며 신속항원검사를 다시 받았다고 한다. 이씨는 구글 번역기로 “조금만 찔러 달라” “코가 아닌 입에서 검체를 채취해 달라”라고 한 끝에 그중 한 곳에서 음성 확인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씨는 국내에 입국한 뒤 PCR 검사를 받은 뒤 양성 판결을 받고 격리 조치됐다고 한다. 본지 취재 결과, 이씨와 비슷한 경우는 또 있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입국 전후 코로나 검사를 요구하는 방역 대책에 실효성이 없다는 전형적 사례”라며 “국내에서는 거리 두기를 푸는 것과 모순적”이라고 했다. 실제 지난 30일 신규 확진자 7만3589명 가운데 해외 유입 발생은 341명(0.46%) 정도로 나타났다. 대부분 국내 지역사회 전파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처럼 대부분 음성으로 나타나는 해외 여행객들이 따라야 하는 절차가 현지에서는 물론 입국 뒤에도 복잡하다는 불만도 많다. 음성 확인서를 보여주고 비행기에 탑승해 인천공항에 내린 뒤에도 입국자들은 질병관리청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 ‘큐코드(Q-CODE)’에 이름 여권 번호, 이메일 등과 함께 음성 확인서 파일을 업로드해야 한다. 아니면 수기(手記)로 작성할 수도 있는데 이는 한국어나 영어를 구사할 줄 모르는 외국인들이 주로 선택한다고 한다.
최근 미국을 방문했다 귀국한 70대 정모씨 부부는 ‘큐코드(Q-CODE)’ 등록에 도전했다가 4시간 넘게 허비했다. 여권 번호까지는 입력했지만, 음성 확인서 파일을 업로드하는 단계에서 한참을 헤맸다고 한다. 정씨는 “일단 귀가했지만,하루 이내에 또 PCR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방역 지침에 또 한번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귀국 후 PCR 검사 비용은 무료지만, 외국 현지에서의 검사 비용도 만만치 않다. 미국에서는 코로나 증상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PCR 검사에 150~200달러가 든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입국 전후에 코로나 검사를 요구하는 방역 지침을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고수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했다.
김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