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흉악범, 그 우울한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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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 흉악범, 그 우울한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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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인권위원장


버러지 같은 고리대금업자를 세상에서 없애버려야 한다는 정의감으로 전당포 노파 자매를 도끼로 살해한 라스콜리니코프는 정의감은커녕 도리어 음울한 자괴감에 빠져든다. 창녀인 소냐의 권유에 따라 자수한 그는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참회의 삶으로 새로운 깨달음에 이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에서 하필이면 흉악한 살인범과 매춘부를 등장시켜 고뇌하는 영혼의 방황과 구원을 속 깊이 추적한다.

제 손으로 귀순의향서를 쓴 북한어민 두 명을 지난 정부가 강제로 북송한 사건에 대해 국내외의 비판이 뜨겁다. 보통 몇 주에서 몇 달이 걸리는 탈북자 조사를 단 사흘 만에 끝내고는 서둘러 어민들을 북으로 보냈다. 눈은 안대로 가려지고 두 손은 포승줄로 묶인 어민들이 북한 땅을 밟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처절한 모습이 영상 속에 생생히 담겨있다. 북에 넘겨진 어민들은 곧바로 처형당했다고 한다.


북송을 두둔하는 정치인들은 그 어민들이 동료선원 16명을 살해한 범행을 자백했지만, 물증이 사라져 처벌할 수 없었다고 강변한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의 법률적 무지가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다. 증거가 없으면 무죄판결을 선고할 일이지, 북으로 보낼 일이 아니다. 게다가 두 어민 모두 범행을 자백했다고 한다. 자백은 보강증거가 있어야 증명력이 인정되지만, 공범 모두가 공판정에서 범행을 자백한 경우에는 물증이나 다른 보강증거 없이 전원을 유죄로 인정해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판례다.


더욱이 자백에는 진정성·임의성이 요구된다. 고문·폭행·회유·기망 따위의 강요나 속임수로 얻어낸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다. 자백의 증명력과 증거능력에 대한 최종판단은 사법부의 고유권한이다. 도대체 귀순 어민들이 법정이 아닌 어디에서, 법관이 아닌 누구에게 범행을 자백했다는 것인가? 그 자백에 진정성·임의성이 있다고 선뜻 판단한 것은 또 누구인가?


귀순 어민들이 타고 온 배는 방역을 위해 말끔히 소독까지 해서 북으로 넘겨졌다. 탈북자에게는 한없는 학대를, 북한에는 한없는 환대를참 모를 일이다. 배 안에서 16명을 살해했다면, 그 배 안팎에 분명코 남아있을 혈흔 등 범행 흔적들이 치밀한 과학수사로 드러나게 된다. 그렇지만 소독약품은 증거를 훼손하고 오염시킨다. 그렇게 소독해서 보낸 뒤에 증거가 없다, 변명이 생뚱맞다.


흉악범이라도 귀순한 이상 대한민국 법질서 안에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그 처벌 여부를 결정한다. 그것이 사법주권이다. 귀순 어민의 강제 북송은 대한민국 사법주권을 포기한 반헌법적 행위다. 북한과 중국에 더할 수 없는 애정의 발걸음으로 다가간 지난 정부는 당연히 미국과 척을 질 수밖에 없었다. 어민 북송 문제가 터져 나올 즈음, 주요 관련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북한이 싫어 탈북한 사람은 북으로 보내고, 북한을 아끼는 사람들은 미국으로 건너가다니얄궂은 일이다.


정의에 헌신하는 사람들은 사랑 말고는 달리 선택할 것이 없다.” 알베르 카뮈가 우리 시대에 단 하나의 위대한 정신이라고 부른 시몬 베유의 신념이다. 그 위대한 사랑의 신념까지 기대할 수는 없다. 그래도 정의를 부르짖던 정부라면, 적어도 귀순 어민들을 사지로 내몰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사람이 먼저다라고 외치던 입들이 지금은 흉악범도 사람이냐라고 싸울 듯이 묻는다. ‘흉악범도 사람이다라는 것이 도스토예프스키, 카뮈, 베유 그리고 헌법과 국제법의 대답이다. 하물며 범죄의 아무 증거도 없다는 귀순 어민들일까?

 
사형수 유영철과 강호순도 수십 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이지만, 지금껏 사형집행 없이 나랏돈으로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준다. 그들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흉악범에 대한 그 사람대접때문에 한국이 사형제도를 유지하면서도 사실상 사형을 폐지한 인권국가라는 아이러니컬한 이름을 얻었다. 페스카마호 선원 11명을 집단살해한 조선족 살인범들을 영치금까지 챙겨주며 따뜻한 동포애로 품어 안았다는 담당변호사가 귀순 어민을 북으로 넘긴 정부의 대통령이라는 사실도 여간 우울한 아이러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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