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약 부작용을 약으로?
임영빈
연세메디컬클리닉
노년내과 전문의
스탠퍼드 시니어 클리닉에 있을 때, 78세 남성환자가 어지럼증과 떨림, 근육경직 증상을 호소하며 찾아왔다. 그가 복용 중인 약 리스트를 훑어보니 무언가 이상했다. 몸이 떨리고 근육이 경직되고 움직임이 느려지는 파킨슨병 증상을 유발하는 성분의 약이 있었던 것이다. 함께 온 딸에게 물으니, 전에는 이러한 증상이 전혀 없었는데 이렇게 된 지 3개월 정도 되었다고 했다.
나는 역학조사에 들어갔다. 살펴보니 환자가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아 새로운 혈압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문에 통풍이 도졌다. 다시 통풍약을 먹기 시작하니 위장장애가 왔고, 그 위장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약을 먹었더니 위장장애는 조금 좋아졌지만 파킨슨병 증상이 생긴 것이다. 나는 환자가 복용 중인 이 모든 약을 정리하고 부작용으로 파킨슨병 증상을 유발할 수 있는 약 복용을 중단시켰다. 얼마 후 어르신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일반인은 약을 어떻게 얼마나 먹어야 하고, 또 어떤 것과 함께 복용하면 안 되는지 잘 모른다. 만약 의료진들이 환자가 복용하는 약 리스트를 꼼꼼히 살피고, 비처방 약물까지 세세히 검토했다면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통풍이 왜 생겼을지 생각해 보고 약들을 리뷰하고, 위장장애가 나타났을 때 환자와 깊은 대화를 나눴다면 예방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약의 부작용을 다시 약으로 치료하려다 일어난 문제다.
가족들 또한 주의가 필요하다. 나는 정기적으로 환자들이 복용 중인 약을 살펴보곤 하는데, 어느 날 어르신이 현재 먹고 있다는 약들을 꺼냈는데, 의아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양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간 내가 처방해 드렸던 약 외에 각종 영양보조제가 가득했던 것이다. 거기엔 총 12가지 영양보조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어르신은 본인이 구입한 게 아니라 모두 딸이 선물로 사준 것이라고 하셨다. 자녀는 당연히 날로 쇠약해지는 부모의 건강을 걱정하며 효도하는 차원에서 챙긴 선물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의도와는 다르게 어머니는 오히려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그 많은 영양제가 정작 어디에 좋은지, 어떤 효과가 있는지 잘 모르고 헷갈리기도 했지만, 약들을 볼 때마다 꼭 먹어야 할 것 같았다고 하셨다. 그렇게 매일 12가지 영양보조제를 먹다 보니 몸도 마음도 부담될 수밖에 없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 이 같은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복용하는 약이 너무 많을 경우 어떤 약이 중요하고 어떤 약이 덜 중요한지 모르고 헷갈려서 정작 중요한 약을 복용하는 걸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드시 챙겨야 할 약을 먹지 못할 경우 자칫 심장마비 같은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고 그래서 다시 또 먹어야 할 약이 늘 수도 있다
만약 부모님의 건강이 우려되어 영양보조제를 선물하고 싶다면, 구입하기 전에 꼭 물어보자. 현재 어떤 약을 어느 정도 복용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이러저러한 보조제를 드릴까' 하는데 괜찮은지 반드시 체크하자. 또 가족이라면 평소에도 환자가 어떤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의사와 상의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새로운 보조제를 선물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선물이라는 걸 기억하자.
문의 (213) 381-3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