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경상도 '동업'으로 초대박 터트렸다
지난 30일 본지를 방문,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들려준 '트루에어' 이용기 전 회장. /구성훈 기자
'트루에어', 주류 기업에 3억6000만달러 매각
연매출 1억2000만달러, #1 에어컨 부품 브랜드
한양대 재학 중 냉동기술자로 베트남 파견
6000달러 들고 '아메리칸 드림' 쫓아 LA로
전라도 사나이와 경상도 사나이가 미국땅에서 만났다.
전라도 사나이는 경상도 사나이에게 ‘동업’을 제안했고, 경상도 사나이는 흔쾌히 수락했다.
함께 비즈니스를 운영한지 36년 만에 이들은 분신과도 같던 사업체를 미 주류기업에 3억6000만달러에 매각하는 ‘초대박’을 터트리는 성공신화를 썼다.
LA다운타운 남쪽 산타페 스프링스에 본사가 있는 냉난방 설비·부품 제조업체 ‘트루에어(TRUaire)’ 이용기(76) 전 회장 이야기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전라북도 익산에서 출생한 이 전 회장은 파란만장한 인생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영등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으며, 말리부의 페퍼다인 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한 이 전 회장은 한국에서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으나 고등학생 때 사업가이자 도의원까지 지낸 아버지가 타계하면서 가세가 기울어 주한 미 8군 식당에서 접시를 나르는 웨이터와 하우스보이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야간대학에서 어렵게 공부했다.
꽃다운 21세 대학생 시절인 어느 날 해외인력 송출업체인 한국해외개발공사에서 월남에 파견할 냉동기술자를 뽑는다는 신문광고가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냉난방 기술자의 대우가 매우 좋다는 말을 듣고 겨울방학 동안 청계천에 있는 냉동학원 속성 3개월 야간반에 등록해 2개월동안 다닌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서 공부해야 했던 그에게는 월급이 많은 파월 기술자는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에 무조건 지원했고, 40대1의 경쟁을 뚫고 베트남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1968년 6월 눈물로 배웅하는 가족들과 김포공항에서 작별한 후 캐세이 퍼시픽 항공 여객기에 몸을 싣고 고국을 떠난 이 전 회장은 베트남 땅에서 또 다시 힘든 생활을 이어가야만 했다. 남들보다 기술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그는 베트남에서도 틈만 나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주 6일 일을 하며 밤에는 메릴랜드 대학 익스텐션 코스를 다니며 성공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이 전 회장은 “3년 가까이 지나 귀국날짜가 다가오면서 막상 한국으로 돌아가려니 눈앞이 캄캄했다”며 “지연이나 학연, 가족 배경을 감안하면 한국에서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동료 중 일부는 베트남에 눌러앉기로 했고, 일부는 필리핀, 미국 등지로 갔다.
고민끝에 그는 미국행을 결심했고, 다니던 교회 목사에게 미국으로 가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LA동양선교교회로부터 미국방문 초청장을 받아줬다.
우여곡절 끝에 3년 간 알뜰히 모은 6000달러를 들고 1971년 LA땅을 밟은 이 전 회장의 ‘아메리칸 드림’을 향한 긴 여정은 이렇게 시작됐다. LA한인타운 아파트에 둥지를 튼 그는 미국인이 운영하는 냉난방 설비·부품업체에서 시간당 5달러를 받고 일을 시작했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 몸부림 치다보니 미국으로 오면서 머릿속에 그렸던 멋진 자동차, 푸른 초원의 집은 꿈에 불과한 것 같았다”며 “그러나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고 미국인과 만날 때마다 영어를 배웠고, 시간을 쪼개 이런저런 기술도 습득했다”고 말했다.
고생 끝에 이 전 회장은 1976년 자신의 이름을 딴 ‘용기 에어 컨디셔닝(Yongki’s Air Conditioning)’을 설립, 사업가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1980년대 들어 한인타운은 크게 성장했고, 어느 덧 직원 수는 10명으로 늘었다. 1983년 회사 이름을 ‘쿨러 엔지니어링(Kooler Engineering)’으로 변경하고, 에어컨 설비와 전기설비 사업을 병행했다. 연매출도 300만달러를 훌쩍 넘겼다.
사업을 하면서 커뮤니티 봉사활동도 열심히 했다. LA한인상공회의소 회장, LA올림픽 라이온스 클럽(현 코리아타운 라이온스 클럽) 회장, LA한인회 부회장, LA평통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 심장병 어린이들을 LA로 초청해 무료로 수술을 받게 도와주는 활동도 했다.
구성훈 기자, sgoo@chosundaily.com, 기사 A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