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 ‘킬러 로봇’ 배치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한 경찰관이 로봇으로 폭발물을 탐지하고 있다. 현지 경찰국은 극한 범죄 상황에서 ‘폭탄을 장착한 살상 로봇’을 운용하겠다는 계획을 최근 시 감독위원회로부터 승인받았다. /AP
경찰 사용 허가, 폭탄 싣고 공격 가능
“극한 상황만 사용” “인류 위협” 찬반
실리콘밸리 한복판에 ‘폭탄을 장착한 살상용 로봇’이 배치된다. 경찰이 ‘총기 난사, 테러 같은 다수의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 한해 철저한 사람의 통제를 거쳐 투입하겠다’며 배치를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결정이 무분별한 ‘킬러(killer) 로봇’의 시초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시 감독위원회는 지난달 29일 ‘긴급 상황 시 살상용 로봇을 쓸 수 있게 해달라’는 샌프란시스코 경찰국(SFPD)의 요청을 승인했다. 샌프란시스코는 빅테크 기업 본사가 밀집한 실리콘밸리의 핵심 도시다.
경찰은 “상상할 수 없는 집단 폭력이 일상화되는 상황에서 살상용 로봇은 무고한 생명을 구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 될 것”이라며 “극한 상황에 한해, 경찰서장 등 고위급의 승인을 거쳐, 총과 같은 화기 장착 없이, 원격 조종을 통해 단순히 폭발물을 배달(delivery)하는 역할에 머물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 시민단체가 “폭발물 로봇 배치는 살인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희석시키는 조치”라고 비판하는 등 반대 여론이 일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시의 결정은 로봇, AI에 대한 윤리가 화두로 떠오른 상황에서 “언제든 로봇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역 매체만이 아니라 BBC, 알자지라 등 외신들도 이 로봇을 ‘킬러 로봇’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아무리 극한 상황에만 쓴다고해도 한 번 허용하기 시작하면, 킬러로봇을 처음부터 쉬운 선택지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또 흑인과 같은 유색 인종이 주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대차 계열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를 비롯한 6개 주요 로봇 제조사는 지난 10월 “첨단 로봇을 무기화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미 전장(戰場)에선 암살용 드론이 활발하게 활용되는 등 윤리 문제는 여전히 진통을 겪고있다.
실제로 로봇의 두뇌 역할을 하는 AI는 무서운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따르면, 바둑 AI ‘알파고’를 만들었던 구글 딥마인드는 고난도 전략 보드게임 ‘스트래티고’에 최적화된 AI ‘딥내시’로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다. 스트래티고는 자신이 가진 불완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상대의 깃발을 찾아내는 것이 목표다. 서로 상대방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정보 수집뿐 아니라 상대방을 속여야 하는 고난도 게임으로 AI에겐 ‘무리일 것’이란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55억개의 게임 데이터를 학습한 뒤 수많은 인간 고수를 제치고 온라인 스트래티고 리그 승률 84%로 역대 세계 3위에 오르는 놀라운 실력을 선보인 것이다. IT 업계 관계자는 “무기와 AI를 결합한 자율 무기 체계가 인류에 큰 위협이 될 것이란 우려가 AI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박순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