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감성 사이] 시간의 재를 넘어 피어나는 생명, 부활의 기록
김미향
오클렘그룹 대표
부활은 단순히 생물학적 죽음 이후의 회복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진실을 지키기 위해 고통을 견디고,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으며 자신의 뜻을 지켜내는 삶을 통과해 오는 조용하고도 깊은 힘이다.
이런 부활의 의미를 떠올릴 때면, 동양의 위대한 기록자 사마천의 『사기』가 생각난다. 『사기』는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시간의 강 위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담은 가장 치열하고 진실한 서사이며, 무너지고 다시 일어난 수많은 삶이 겹겹이 쌓인 거대한 거울이다.
사마천은 승자의 역사만을 기록하지 않았다. 오히려 패자와 실패자, 이름 없이 사라진 이들의 곁에 더 오래 머물며 그들의 이야기를 붙들었다. 유방에게 패한 항우는 전투에서는 졌지만, 기개에서는 꺾이지 않았고 사마천은 그를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인간의 숭고한 존재로 기록했다. 권력의 그늘로 스며든 이도 있었고,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사마천의 붓 아래에서는 평범하지 않았다. 그들의 삶은 모두 하나의 치열한 부활이었다.
부활절이 전하는 가장 깊은 메시지는 바로 ‘회복’의 가능성이다. 십자가 위의 고통은 역사 속 수 많은 인간의 고통과 겹친다. 그리고 그 고통 끝에서 예수는 말없이 부활한다. 그 부활은 웅장한 장면이 아니라, 고요한 진실과 용기, 그리고 희망을 잃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쩌면 부활 이전의 시간과 닮아 있다. 정치의 분열, 경제적 양극화, 기술의 빠른 변화 속에서 인간성은 점점 희미해져 가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작은 진실을 지키며 묵묵히 하루를 살아낸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말 없이 삶을 일구고, 누군가는 사회의 한켠에서 불의를 기록하며 자신의 이름조차 남기지 않는다. 이들 모두가, 어쩌면 『사기』의 인물들처럼 우리 시대의 부활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사마천은 말했다. 글로써 사라진 자를 되살리고, 정의롭지 못한 시대에도 진실을 남긴다고. 그의 말은 곧 시간의 재를 넘어 삶을 다시 피워내는 기록의 기적을 뜻한다. 그 속에는 거창한 영웅보다도 인간적인 이들이, 실패했지만 고귀한 이들이, 그리고 우리처럼 불완전하지만 살아 있는 이들이 있다. 부활은 먼 신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하고, 써 내려가고, 살아내는 매일의 삶 속에서 조용히 움트는 기적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이미 그 길 위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