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88세로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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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88세로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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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다음날인 21일 하늘나라로

2013년 266대 교황 선출돼 즉위한지 12년 만

"전쟁하는 세상에 평화를" 마지막 메시지

생전 한국 각별히 아껴, 아시아 국가중 첫 방문


온화한 미소로 소외받는 이들을 위로해주던 프란치스코(88·사진) 교황이 부활절 다음 날인 21일 선종(善終) 했다. 

2013년 3월 역사상 첫 남미(아르헨티나) 출신으로 266대 교황에 선출돼 즉위한 지 12년 만이다. 그는 선종 전날까지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부활절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교전 당사자들이 전쟁을 중단하고 인질을 석방하기를, 굶주리고 평화로운 미래를 열망하는 국민들에게 도움을 주기를 호소한다”는 부활절 메시지는 전쟁과 분쟁으로 지친 세상에 남긴 교황의 마지막 당부가 됐다.

교황청은 폐렴과 그 합병증으로 투병해오던 교황이 21일 오전 7시 35분(로마 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했다. 케빈 패럴 교황청 평신도가정생명부 장관은 “오늘 아침 로마의 프란치스코 주교(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성부(聖父·하느님)의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의 전 생애는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데 헌신했다”며 교황의 선종을 알렸다. 지난 2월 기관지염에 이은 폐렴으로 장기간 입원했던 교황이 지난달 퇴원하자 기뻐했던 신자들은 이날 갑작스레 전해진 교황과의 이별 소식에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교황의 시신은 그가 평소 사용하던 전용 예배당으로 옮겨졌다. 교황의 유언에 따라 그는 바티칸이 아닌, 로마 시내의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성 마리아 대성당)에 안장될 예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 후 첫 외부 방문지로 선택했을 만큼 애착을 보였던 장소다. 선종한 교황이 바티칸 밖에 묻히는 것은 드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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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소한 언행과 온화한 성품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과도 인연이 각별하다. 교황 즉위 후 세 번째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해 2014년 8월 서울·대전을 찾아 가까이서 신자들을 만났다.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한 교황이 경차를 타고 달리며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모습은 소박한 종교 지도자의 따뜻한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38일간 투병, 휠체어 타고도 교도소 재소자 찾았다

‘가난한 이들의 성직자’라 불리며 가톨릭 교회의 포용적 측면을 강조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망에 전 세계가 애도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선 이날 오전 11시 교황을 기리기 위한 조종(弔鐘)을 울렸다. 매일 밤 에펠탑을 점등하는 파리시는 교황의 선종을 애도하는 뜻에서 이날 밤엔 불을 켜지 않을 예정이다. 아시아 최대 로마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의 여러 성당에서도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을 애도하는 종을 울렸다. 영국 정부는 교황의 선종을 계기로 화요일 저녁까지 정부 청사에서 반기(半旗)를 게양하도록 했다. 이탈리아에서도 교황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조기를 게양했다.

교황은 지난 2월 이후 여러 차례 위독한 상태를 겪었다. 지난 2월 14일 기관지염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로마 제멜리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고, 이후 양쪽 폐에 모두 심한 폐렴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후 신부전 증상까지 나타나며 건강 상태가 급속히 나빠졌다. 

젊은 시절 늑막염을 앓은 후 오른쪽 폐의 일부를 절제했던 교황은 겨울철이 되면 기관지염 등 호흡기 질환을 자주 앓아왔지만 의학 전문가들은 ‘이번엔 상태가 심각하다’는 소견을 냈다.

당시 교황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구촌 곳곳의 신자들은 교황의 회복을 기원하며 기도를 올렸다. 교황청도 저녁마다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교황의 쾌유를 기원하는 묵주 기도회를 열었다. 그가 입원했던 로마 제멜리 종합병원 앞에는 전 세계에서 전해진 꽃다발과 그림, 편지가 가득 놓이기도 했다. 이런 신자들의 기도가 응답을 받았는지, 교황은 지난달 23일 역대 최장 입원 기간인 38일간 입원 치료를 마치고 퇴원해 평소 머무르던 산타 마르타의 집으로 복귀했다. 의학 전문가들은 “그야말로 기적적 회복”이라고 했다. 교황은 퇴원 후 코에 산소 공급 튜브를 꽂고 휠체어에 앉은 채로 때때로 외부 일정을 소화하며 의욕적으로 평소 업무에 복귀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전보다는 기력이 쇠한 모습이 역력했다.

교황은 부활절을 사흘 앞둔 지난 17일 로마 시내의 ‘레지나 코엘리’ 교도소를 방문해 교도관과 재소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지난주부터는 산소 공급 튜브를 제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건강 호전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지난 20일 부활절 미사를 집전하진 못했지만, 미사 후 성베드로 대성당 2층 발코니에 나와 축복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 콩고, 미얀마 등 분쟁 지역의 평화를 호소했다. 또 흰색 무개차(無蓋車)를 타고 광장을 가로지르며 군중에게 인사를 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교황은 마지막 부활절에 성 베드로 대성당의 로지아(loggia·발코니)에서 부활절 축복 메시지를 발표하며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절을 축하합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메시지는 교황청 소속 디에고 라벨리 신부가 대독했다. 교황의 마지막 부활절 메시지 중 일부다. “하느님의 눈에 모든 생명은 소중합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아이, 노인이나 병든 사람처럼 많은 나라에서 버려져야 할 사람으로 여겨지는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분쟁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죽음을 보고 있습니까. 가장 약하고 소외된 이주민에 대한 경멸이 때때로 너무나 많이 나타납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와 가깝지 않거나 관습이나 삶의 방식, 사상이 다른 이에게도 신뢰와 희망을 품어야 합니다.”

☞선종(善終)

가톨릭에서 ‘착한 죽음’ ‘거룩한 죽음’을 의미하는 표현.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끝마친다’는 뜻의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준말이다.


바티칸=정철환 특파원, 유재인 기자 기사 A2면·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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