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행복칼럼] 스승의 날을 보내며...
월드쉐어USA 대표
오랜만에 한국에서 오월을 보내며 색다른 경험을 한다. 특히 스승의 날에 한국에 있다는 것이 새로운 의미를 주었다. 스승의 날 새벽에 문자 몇 개를 받았다. 그중에 스승이라 불러 주는 것만으로 황공한 장로님의 문자가 있었다. 장로님 문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전략) 스승의 날을 맞아 저에게 기억되는 목사님이 계셔서 감사합니다. (중략) 항상 성령 충만함과 강건하심으로 주님께서 주신 사명 잘 감당하시기를 손 모아 기도합니다.”
감사하기도 하고 당황스러웠다. 장로님은 존경하는 형님 같은 분이시다. 오래 전에 육군본부 교회 주일학교 담당목사로 일할 때 장로님은 주일학교 부장님이셨다. 당시 부장님의 헌신과 열정은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세월이 흘러 둘 다 전역하고 태평양 건너편에 살지만 서로 안부를 묻고 기도 제목을 나누고 있다. 형님 같은 장로님의 문자에 놀랐다.
이른 아침 장로님 문자를 받고 나도 스승님께 문자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스승님 대부분이 이미 세상을 떠나셔서 두 분께 문자를 보낼 수 있었다. 한 분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이셨다. 고교 반창회 때에 가끔 뵙는 오현세 선생님이시다. 또 한 분은 중3 시절에 만나 고등학교 2학년 말까지 학생회 담당 전도사님이셨던 김낙춘 목사님이시다. 김 목사님은 나의 방황과 반항의 날을 보듬어 주신 은사님이시다.
상황이 허락되어서 김 목사님을 16일에 만났다. 40여 년 동안 관계를 이어오고 있으니 나눌 이야기가 많았다. 과거, 미래 그리고 현재를 넘나드는 얘기들을 나누었다. 목사님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고등학생 마음이 된다. 스승님이 밥값을 내셨는데 나는 밥값을 낼 생각도 없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차!’ 했다. 나이 차이도 별로 없는데 스승님 앞에서는 늘 어린 학생이다.
한편, 스승의 날을 보내며 맘이 아팠다. 지난 3월에 스승님 강용조 목사님께서 소천하셨다. 코로나 상황이기도 했고, 개인적 상황으로 장례식 참석이 불가능했다. 마음을 다해 조언해 주셨고, 영혼을 담은 기도로 삶과 사역을 축복해 주셨던 스승님의 마지막을 배웅하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다. 아쉬운 마음에 금번에 사모님을 뵙고 옛 얘기 나누며 울고 웃었다.
그런데 정작 15일 스승의 날에는 동생의 스승님께 인사드렸다. 목회하는 동생이 스승의 날이라 스승 목사님을 강사님으로 모셨다고 했다. 일정을 조정해 동생 교회로 가서 동생의 스승님께 인사드렸다. 스승님을 모시는 동생의 마음과 그의 여건이 부러웠고, 제자의 교회에서 설교하시는 스승 목사님도 부러웠다. 스승님을 모시려는 동생 목사의 마음이 대견스러웠다.
1부 예배와 2부 예배 사이에 차를 마셨다. 그 짧은 시간에 어린시절 이야기, 가정 이야기를 신나게 말씀드리는 아우 목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스승님 앞에서 약간 흥분한 듯했다. 아마 자신의 스승님께 인사드리러 일부러 찾아온 형이 있어서 조금 더 신났으리라. 행복한 제자와 행복한 스승님 모습, 스승의 날에 볼 수 있는 멋진 광경이었다.
모든 인생은 스승이 필요하다.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를 수 있는 스승의 존재가 건강한 행복의 조건이다. 누가 우리 스승일까?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시다. 아울러 천국과 영생의 진리를 가르치는 목사님과 교역자가 스승일 것이다. 목사님들이 성도들에게 참된 스승이 되었으면 좋겠다. 담임 목사님이 부목사의 직장의 보스가 아닌 스승님이 되었으면 좋겠다. 스승의 날을 보내며 이런저런 소원을 품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