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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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길

웹마스터

이보영

평통 통일전략 전문위원


“지피지기 백전불태 (知彼知己 百戰不殆).”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손무’가 쓴 손자병법(孫子兵法)의 모공편(謨攻篇)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적의 상황을 잘 알고, 나를 알고 있으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모공편은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을 전쟁의 최상책으로 여기고 있다. 실제로 전쟁을 벌이지 않고 군사력, 경제력, 외교, 군사동맹, 차원에서 적을 크게 능가하게 되면, 적의 우두머리는 전쟁에 승산이 없으면 싸움을 포기하게 되고, 적의 군사들도 사기저하와 충성심이 와해되어 전쟁 없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독일의 통일은 결코 우연한 산물이 아니었다. 통일전 서독은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월등히 동독을 능가하는 ‘힘의 우위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또한, 서독은 이웃 서방국가들과 외교와 친선관계를 강화했고, 특히 동유럽국가들과는 군비통제, 긴장완화, 무력사용포기 등의 평화공안을 보내 그들과 무역대표부까지 설치하는 ‘외교력’을 발휘했다. 점차 고립되어 가던 동독정부는 주민들의 서독에 대한 동경심이 점증하자 결국 서독이 요청한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동서독 간 교류협력에 응하게 되었다.


‘기본조약’이란 국경 불가침과 영토보존, 무력위협이나 무력사용 포기, 양독 간의 상호주의 인정, 분야별

인적·물적 교류 및 협력 등을 규정하는 조약으로 10개의 부속문서로 구성되어 있다.


통독의 사례야 말로 손자병법 모공편의 최상책,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킨 현대사의 실례(實例)가 되었다. 통독 후 12년이 지난 2000년대 독일에서 다년간 근무할 때, 어쩌다 동독지역을 방문 또는 통과하면서, 보고 느낀 점은 파손된 교통 인프라, 버려진 도시, 폐허된 시설, 가난에 찌든 동독인, 재건의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던 땅들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10월로 통독 34돌을 맞았다. 폐허가 현대식 주거지와 상업지로, 전자공단으로 변모했다. 양독 간의 문화와

삶의 수준도 비슷하게 좁혀졌다. 천문학적 자본이 투입되긴 했지만, 그 효과가 세계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분명 우리에겐 벤치마킹(Benchmarking)의 대상이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오시면 솔직히 걱정스러운 것이 우리 교통이 불비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습니다. 평창올림픽에 갔다 온 분들이 다 말하는데 평창 고속열차가 아주 좋았다고 하더군요. 남 측의 이런 환경에 있다가 북에 오면 참으로 민망스러울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비행기로 오시면 잘 마중하겠습니다.”


이 말은 북한 최고지도자가 문 대통령에게 방북초청 인사말에서 북한의 불비한 도로 상황을 실토한 셈이며, 실제로 문대통령은 4개월 후 대통령 전용기로 평양을 다녀왔다.


‘교통 인프라’는 경제활동의 기반과 사회적 생산기반을 형성하는 ‘기초적 시설’로서 도로, 항만, 공항, 철도, 수로, 하천 등 경제활동에 밀접한 ‘사회적 자본’을 의미한다.


북한의 교통망은 ‘주철종도(主鐵從道)’ 즉 철도가 주역(主役)이고, 도로는 철도를 보조하는 교통시스템이다. 그런데도 북한의 도로법엔 “도로는 나라의 얼굴이며, 경제수준과 문명척도를 보여주는 것” 이라고

명시했다.


한국의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19년 기준으로 북한의 도로 총연장은 26,180km, 한국의 111,314km 대비

24% 수준이다. 고속도로를 제외한 도로 포장율은 10% 미만이며, 간선도로 대부분이 왕복 2차선 이하다. 도로의 노면(路面)은 균열이 심해 평탄성이 낮아 자동차의 주행속도는 시속 50Km 이하로 제한적이다.

도로의 안전시설도 매우 부족한 실태이다. 북한의 고속도로는 총 6개로 총연장은 660Km, 한국의 14% 수준이다.


북한의 최초 고속도로는 평양–원산 간 총연장 196Km의 4차선 콘크리트 도로로 1978년에 완공되었다. 그후 평양–강동, 원산–금강산, 평양–개성, 평양–향산 간 고속도로가 차례로 건설됐고, 평양–남포 간 고속도로(청년영웅도로)도 2000년도에 개통되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최초 경부고속도로는 총연장 416Km의 4차선으로 1968년에 챡공해 1970년에 완공했다.

(현재는 부분적으로 왕복 4차선에서 10차선으로 증폭되었다)


북한은 자력갱생 경제개발로 전력과 철도운수가 그들의 주력 인프라였다. 도로운수에는 자동차 숫자도

적고, 석유도 부족하고, 또 도로정비에 투입될 재정도 감당할 수 없다 보니 불비한 실정이 되고 말았다. 주민들의 지역 간 이동통제, 전쟁시엔 적의 차량이 느리게 달려야 유리하다는 그들의 전략에도 도로가 낙후되는데 한몫을 했다고 분석된다.


남북한은 6.25전쟁 후 현재까지 70년간 휴전선을 경계로 대치하면서 정전(停戰) 중에 있는 유일한 나라다.

‘정전협정(Armistice Agreement)’이란 당사국 간 협상으로 전체 전선에서 전투가 중단된 상태이며, 잠정적

합의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의 동서남북으로 시원하게 뻗은 고속도로, 고속전철, 고속통신시스템, 그리고 세계로 연결된 허브 공항, 대형선들이 드나드는 항만 등 교통망 인프라는 경제발전의 밑거름이며, 곧 힘이다. 상대(敵)보다 월등하게 군사력, 경제력, 정신력(애국심), 외교와 군사동맹 등을 꾸준히 압도해 나간다면, 상대는 감히 우리를 넘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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