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간 4.99달러...통닭의 의리
한 코스트코 매장에서 직원이 로티세리 치킨을 구워내 포장하는 모습. 각 식료품점과 유통업체들은 시그니처 상품인 로티세리 치킨을 통상 매장 제일 안쪽에 배치, 고객들이 다른 상품을 충분히 둘러본 뒤 마지막에 치킨을 카트에 담도록 유도한다. 비즈니스 인사이더
다른 물가 다 올라도 너만 믿는다
업체들, 다른 상품 가격 올려 벌충
1980년대 초인플레이션 시대에 맞먹는 8%대 물가 상승률로 신음하고 있지만, 대형 식료품점과 유통업체가 파는 로티세리 치킨 값은 대부분 수년째 그대로다. 로티세리 치킨은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통닭을 꼬챙이에 끼워 전기 오븐에서 바삭하게 구운 요리다.
14일 코스트코에서는 로티세리 치킨을 4.99달러에 팔고 있다. 샘스클럽에선 4.98달러다(매장에 따라 약간 다를 수 있다). 13년 전 로티세리 치킨을 4.99달러에 선보인 코스트코를 포함, 대부분 업체가 팬데믹 이전 가격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가금류 값이 전년 동월 대비 14% 넘게 폭등한 것을 감안하면 불가능해 보이는 가격이다. 최근엔 생닭 값이 같은 크기의 로티세리 치킨을 뛰어넘는 경우도 있다.
CNN과 NPR 등에 따르면, 로티세리 치킨 값을 올리지 않는 이유에 대해 업체들은 “고물가 시대에 고객을 배신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절반은 맞는 말이다. 소비자들은 자주 사먹는 로티세리 치킨 가격을 정확히 알고 있어서, 1센트만 올라도 금세 눈치챈다고 한다. 우유나 계란, 휴지 같은 필수품 가격 변동에도 민감하지만, 로티세리 치킨은 따끈할 때 사 와서 바로 식탁에 오르는 품목이라 가격에 대한 심리적 영향이 즉각적이고 더욱 크다는 것이다.
오르지 않는 로티세리 치킨 가격만 보면 업체들이 밑지는 것 같지만, 충성 고객을 붙잡아두는 효과가 강해 손실을 벌충하고도 남는다는 게 마케팅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표적인 ‘로스 리더(loss leader·원가 이하로 매우 싸게 파는 미끼 상품)’라서, 손님들이 ‘물가가 올랐는데, 여긴 치킨을 아직도 싸게 파네’라고 안도하며 가격이 오른 다른 상품까지 쇼핑 카트에 더 담는다는 것이다. 로티세리 치킨을 사러 매장을 더 자주 찾게 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업체들은 로티세리 치킨 판매대를 매장 가장 안쪽에 배치한다. 여러 상품을 고르면서 무의식중에 고소한 닭 냄새를 따라간 손님이 마지막에 치킨을 담으며 “오늘도 쇼핑을 잘했다”고 느끼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정시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