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시니어] 천년 묵은 고목은 그림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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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시니어] 천년 묵은 고목은 그림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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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의 산 증인 양재윤 법학 박사


1935년생 양재윤 박사(사진)는 지난 2021년 이룬 것도 남겨 놓을 것도 없는 인생의 허무함에 스스로를 빗댄 회고록 ‘천년무영수(千年無影樹)를 펴냈다. 1960년 행정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한 양박사는 5.16 군사 혁명기를 거치면서 국가재건최고위원회 박정희 의장의 부름을 받아 비서실 행정관으로 임명 된다. 당시 비서실장이 훗날 포항제철 회장을 역임하고 국무총리를 지낸 박태준 준장. 국가재건최고위원회는 최고의 인재들이 모이는 곳이었는데 민간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참여하여 전 세계에 유학을 가 흩어져 있던 인재들을 모아 KIST를 설립하고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을 수립하는 등 굵직굵직한 기안들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

당시 국가재건최고위원회와 박정희 의장의 고민은 국민들이 왜 ‘혁명’을 했는지 몰랐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막중한 임무는 바로 ‘5.16 군사혁명과 국가재건최고위원회의 업적’을 기록하고 남기는 일이었다. 그는 한국은행, 경제기획원 등 모든 자료를 총망라하여 1963년 5월 30일 민정이양 때 ‘한국군사혁명사’를 2권의 책으로 발간한다. 이 인연으로 박정희 대통령과의 긴 인연은 시작되었고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유지를 받들어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체계적으로 수립하게 된다. 당시 해산된 국회를 다시 세우기 위해 국회사무관과 입법 심의관이 되어 13개 국회분과를 두루 섭렵한 것도, 재무위원회 전문위원을 지내며 주요 법안들의 본회의 통과 시스템이 정착하게 만든 이도 바로 양박사다. 청와대 정보보좌관을 역임한 탓에 3선 개헌과 카터 대통령의 방한과 ‘주한 미군 철수 논란’ 등 갈등들을 직접 옆에서 지켜 보았고 ‘서구식 민주주의가 아닌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창안한 것도 바로 양박사다. 


#. ‘한강의 기적’ 산 증인

 박정희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단골로 동행 하였기에 서독방문 때의 감격이나 차관도입 비화, 한·일 국교정상화 등 역사적 현장들과 경제성장을 목격한 ‘한강의 기적’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솔선수범하는 지도자였다. 초가을에 벼 이삭이 피어 오르면 신 새벽에 점퍼에 모자를 눌러 쓰고 지프를 손수 운전하여 경호실도 모르게 청와대를 빠져 나와 물이 고인 논바닥에 직접 들어가 벼 한 포기에 가지가 몇 개인지 일일이 세고 벼 한 가지에 벼 알이 몇 개씩 달려 있는지를 세서 수첩에 꼼꼼히 적고는 집무실에 앉아 논의 면적과 벼 알의 통계를 내서 전국 금년 추수 예정 수치를 계산할 정도도 치밀한 분이었다고. 박정희 대통령의 집무 스타일인 ‘확인 행정’의 한 단면이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리더와 함께 경부고속도로 개통, 포항제철소 준공 등을 비롯한 경제부흥을 곁에서 지켜 보며 근로의 미덕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도 했다.


#. 천년무영수, 금시몰저화

양 박사의 이러한 질주는 39살에 멈추게 된다. 워싱턴 D.C에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와 있던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 되고 미국에 눌러 앉게 된다. 자신의 중·고등학교 동기인 고건 전 총리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5공 정권과 맞지 않았던 양박사는 대한민국의 방산과 무기도입을 위해 미국에 남아 고국을 위해 묵묵히 일했다. 그때 깨달은 것이 바로 화두인 천년무영수(千年無影樹), 금시몰저화(今時沒底靴)이다. 인생이란 천 년 묵은 그림자 없는 나무요, 오늘의 바닥 없는 신발이라는 뜻. 화려했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이룬 것도 남겨 놓을 것도 없는 인생의 허무함을 책에 담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남긴 것이 많다. 앞서 언급한 ‘한국군사혁명사’를 비롯, 국회의 경험을 담은 ‘국회헌정사’,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비화 ‘역사를 바로 알면 미래가 보인다’와 ‘근대 정치사’ 등 저서들이 그것이다. 그는 지금도 살아 있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증인으로서 강연을 하며 글을 기고한다. 진실이 왜곡되는 것만큼은 기필코 막고 싶기 때문이며 그가 남긴 증언들은 귀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이훈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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