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부모님의 판단력이 의심된다면
임영빈
임영빈 내과 원장
주로 연세가 많으신 환자분들과 '삶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죽음은 무엇인지'라는 깊은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다. 오늘은 필자가 상담했던 83세 아버님과 그의 따님 이야기를 통해 판단력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아버님은 몇 년 전 위암 치료를 받으셨지만 최근 몸무게가 급격히 줄기 시작하셨다. 사실 아버님은 정기적으로 위내시경 검사를 받으셔야 했지만, 매번 거절하셨다.
자, 여기서 잠깐 생각해보자. 만약 여러분이 의사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게 옳을까? 환자가 치료를 거부한다면, 그 이유를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해야 할까? 필자는 의사로서 아버님의 의사결정 능력을 먼저 평가해야 했다. 혹시 치매가 있어서 치료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건 아닌지, 아니면 단순히 검사를 잊으신 건 아닌지 말이다. 하지만 아버님은 위암 치료와 재발 위험성까지 정확히 이해하고 계셨다.
그 다음으로는 아버님의 정신적 상태를 살펴봤다. 혹시 우울증으로 생을 빨리 마감하고 싶은 건 아닌지, 혹은 치료 장단점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시진 않는지 말이다. 하지만, 아버님은 자신의 건강 상태와 그에 따른 결과를 충분히 이해하고 계셨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마지막을 준비하고 계셨다.
아버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민 와서 다섯 자식을 성공시켰고, 이제는 충분히 살았다. 더는 치료를 받지 않겠다." 환자가 이런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의사는 반드시 네 가지를 확인해야 한다. (1)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내 건강 상태가 어떻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아는 지 (2) 치료방법의 장단점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는가? 치료가 어떤 이점과 문제를 가져올지 아는 지 (3) 환자의 가치관과 일치하는가? 환자가 중요하게 생각해온 삶의 방향과 선택이 맞는 지 (4) 본인의 결정에 확신이 있는가? "이건 내 선택이다"라고 믿고 있는 지.
만일, 이 네 가지가 충족된다면, 환자가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나서는 가족들과 이 결정을 공유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사례에서 아버님은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계셨고, 따님과의 대화 끝에 위내시경 검사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6개월 뒤, 아버님은 다시 저를 찾아오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피를 토하며 위암이 재발한 상태로 오셨다. 이미 식사도 못 하고 헛구역질을 하는 상황이었다. 저는 아버님과 따님께 증상 완화에 집중하는 호스피스 치료를 제안드렸고, 다행히 아버님은 몇 달 전부터 마지막을 준비해 오셨기에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도 아버님은 필자가 집필한 책을 여러 권 구매하시고, 기부하시겠다며 삶을 마무리하셨다. 정말로 존경스러운, 끝까지 타인을 먼저 생각하시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분이셨기에, 절대 잊을 수 없는 환자 중 한 분이셨다. 문의 (213) 909-98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