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칼럼] 장애로 누리는 축복
윤덕환 목사
수필가· IMB 은퇴선교사
어려서 국민(초등)학교 다닐 때 청각장애자를 귀머거리라고 불렀다. 어린 내겐 귀머거리라는 단어는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단어 중에 하나였다. 이유는 아버지가 청각장애자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한쪽 귀로만 겨우 들으시기에 식구들이 그의 귀에 대고 고함을 질러야했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남과 얘기를 할 때 자신들도 모르게 목소리가 너무 커서 핀잔을 자주 듣곤했다. 그 후 아버지는 일제 중고 보청기를 사용하셔서 귀에 대고 고함칠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보청기에 대고 큰소리로 말해야했다.
예배 시 설교를 직접 들을 수 없어 메모지에 대략의 중요 내용을 써서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청각장애도 있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한쪽 눈이 실명상태였다.
얼마 전, 한국에 있는 넷째 누나가 31년이나 오래된 어버지의 간증문을 보내왔다. 교회 회지에 실린 아버지의 간증은 성경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고 제자가 예수님께 이 사람이 소경된 것이 뉘죄로 인함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함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요 9:1-3).
아버님 간증에 의하면 이 성경의 이야기로 아버님은 자신의 장애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음을 깨달으신 것이다. 아버님께서는 자신의 장애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실 것을 생각하며 큰 위로를 받으신 것이다. 그동안 자신의 신체장애로 자괴감과 사회적 냉대에 시달렸으나 예수님의 말씀으로 자존감을 회복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의 간증에는 장애자가 된 과정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가 출생할 때 딸만 일곱을 낳은 후 아버지가 아들로 태어나니 너무 소중한 아들이었다. 그래서 부모와 할아버지의 과잉보호를 받고 자랐던 것이다. 그래서 몸에 좋다는 인삼을 보약으로 자주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화근이 되어 7살에는 시력을 잃고 소경될 뻔했다가 많은 의료비를 사용하고 겨우 한쪽 눈만 회복되었다고 한다.
그 후 22살 때 허약한 몸을 돌보기 위해 한약 보약을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약 부작용으로 청력을 잃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쪽 귀만 간신히 들리는 청각장애자가 되었다 한다. 아버지가 구세군에서 어머니와 결혼하시고 7남매를 얼추 3년 터울로 낳으실 때마다 아기가 장애자로 태어났을까봐 마음 졸이며 기도했다고 한다.
다행히 자녀들이 자신과 같은 청각과 시각장애 없이 모두 건강하니 이런 축복이 어찌 사람의 힘으로 되겠냐고 간증하셨다. 또 6.25 때 인민군들이 동네사람들을 북쪽으로 끌고 가려는데 장애자여서 위기를 모면하셨다며 감사하셨다. 아버님은 ‘장애의 축복’이라는 자작시를 쓰셨다.
듣지 못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둥 같은 소리에도 잠을 잘 잘 수 있도다.
욕설도 듣지 못하니 원수 될 일도 없고/ 심령이 평안하니 항상 기쁘도다.
기쁨이 충만하니 누구에게도 웃게 되어/ 좋은 사람 되고 사랑으로 찾아오네. (후략)
아버지가 신앙생활 잘 하시며 96세까지 사시고 소천하셨다. 장수의 비결은 세상이 주는 스트레스 될 일을 듣지 못해서 오랫동안 잘사셨다고 자작시에서 고백한다. 그러고 보면 장애자에게도 축복되는 일이 생기니 세상은 참으로 공평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