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다 가지려는가? 다 잃는다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리스를 넘어 이탈리아 이집트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고 인도 북부에까지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철학과 정치학 등을 배운 알렉산드로스는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정복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그리스문명과 동방문화를 융합하는 헬레니즘 문명시대를 연 것이다.
장성한 아들이 없었던 33세의 알렉산드로스가 갑작스런 열병으로 죽게 되자, 임종의 자리에서 장군들이 대왕에게 묻는다. “제국을 누구에게 넘기시렵니까?” 대왕의 유언이 전설처럼 전해진다. “힘 있는 자가 차지하라.” 자기가 죽은 뒤의 계승권 싸움을 내다본 예견이었을 것이다. 그 예견대로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은 안티고노스 프톨레마이오스 카산드라 리시마코스 셀레우코스 등 여러 장군들의 피 터지는 권력투쟁으로 갈가리 찢겨졌다. 디아도코이 전쟁이다.
가장 강력한 군대를 가진 안티고노스가 스스로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제국의 통치권을 거머쥐었지만, 얼마 안 가서 다른 장군들의 연합군에게 패배했다. 대제국을 혼자 차지하려다 다 잃은 것이다. 안티고노스를 제거한 장군들은 제국의 영토를 넷으로 나누어 각자 다스리기로 합의하고 전쟁을 끝냈다. 함께 나누기로 하자 비로소 평화가 찾아왔다.
셀레우코스는 바빌로니아에서 자기 왕조를 세웠는데, 그의 후손인 안티오쿠스 4세는 스스로를 에피파네스 즉 ‘신의 현현(顯現)’이라 칭했다. 그 신이 페르시아 원정 도중에 죽자, 사람들은 그를 에피파네스가 아니라 에피마네스라 불렀다. ‘미친 놈’이라는 뜻이다. 제왕의 이름을 넘어 신의 이름까지 훔치려다 제 이름마저 잃은 것이다.
모든 입헌민주국가는 입법 사법 행정의 3권 분립을 헌법의 대원칙으로 삼는다. 이승만 초대대통령은 항일독립운동과 자유대한민국 건국의 빛나는 업적을 이뤘지만, 3권 위에 군림하는 장기집권을 시도하다가 4․19혁명으로 불행한 종말에 이르렀다. 5천년 가난을 몰아낸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으로 3권을 장악한 초월적 권좌에 올랐다가 측근의 총구에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누구도 다 가질 수 없는 법이다.
편 가르기로 5년을 지탱해온 지난 정권은 입법부도 사법부도 몽땅 틀어쥐었다. 국회의원과 대법관, 헌법재판관의 절대다수를 자기편 사람으로 채운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대통령이나 정권을 비난할 일이 못된다. 국회가 입법권을, 법원이 재판권을 올바로 행사했다면 말이다. 그렇지만 검경수사권을 조정한다는 검찰청법, 형사소송법 개정은 날치기 입법이라는 비판에 직면했고, 검찰수사권을 박탈하는 ‘검수완박’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지탄을 받았다.
대통령후보로 나서려는 사람이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하급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자, 대법원은 ‘부정확한 표현이라도 적극적 허위진술이 아니라면 무죄’라는 취지의 야릇한 판결로 그에게 대권 도전의 기회를 제공했다. 20년 장기집권을 외치던 정파가 5년 만에 파국을 맞은 데에는 권력에 영합하는 입법부와 사법부의 일탈도 적잖은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 일탈 뒤에는 3권 분립을 우습게 여기는 권력의 손길도 어른거렸을 테고…, 다 거머쥐려다 다 놓친 것이다.
과거의 불행만이 아니다. 새로이 출범한 현 정부에 절실한 교훈이기도 하다. 다 가지려는가? 다 잃는다. 검찰 출신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에서 대통령과 가까운 검찰 출신들이 입법부와 사정기관은 물론 경제, 안보, 인사 등 요직을 두루 차지하는 것은 국민통합을 위해서도, 국정의 균형적 운영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함께 나누는 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생(共生)의 지혜다.
홀로 살아가는 생명체가 있는가? 모든 생명은 공생의 길을 따른다. 들이키는 들숨과 내어주는 날숨으로 호흡하며 살아간다. 날숨은 남에게 빼앗기는 내어줌이 아니다. 내 호흡을 이어가는데 꼭 필요한 내어줌이다. 날숨이 없으면 죽는다. 통합은 남에게 베푸는 시혜(施惠)가 아니다. 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함께 나누는 공생의 숨결이다. 다 잃지 않으려면 함께 나눠야한다. 다 움켜쥐려 하다가는 다 잃을 터이기에(Grasp all, lose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