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생활 인문학] 루쉰의 “중간물”과 십자가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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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의 생활 인문학] 루쉰의 “중간물”과 십자가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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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소설을 읽으면 작가 루쉰을 만난다. 루쉰은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다. 루쉰은 탁월한 작가다. 그러나 루쉰은 작가 이상이다. 그는 작가이면서 개화기 중국사회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계몽했던 사상가다. 그가 근대 중국의 정신적 기초를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쉰은 <아Q정전> <광인일기> 그리고 <고향> 등 고전의 반열에 오른 걸출한 작품들을 남겼다. 깊은 숙고가 농익은 그의 작품에는 묵직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비평가들은 그의 글을 투창 같고, 비수 같다고 했다. 그의 예리한 글에 담긴 메시지는 중국은 물론 한국을 깨우는 계몽의 등불이 되었다.

   

루쉰은 한국 문단과 사상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독립운동가요 저항시인인 이육사는 루쉰 추도문에서 “이 위대한 중국 문학가의 영정 앞에 고요히 머리를 숙인다”라며 존경을 표했다. 많은 한국학자들이 그의 작품이 한국작가에 미친 영향을 연구했다. 그의 소설은 현진건, 염상섭, 그리고 채만식과 비교되어 논문으로 나왔고, 그의 시는 한용운과 비교되어 논문으로 나왔다. 

   

<사회를 깨우고 사람을 응원하는 루쉰의 말>이라는 책이 있다. 루쉰의 잠언집인 셈이다. 이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해 본다. “용감한 자는 분노하면 자신보다 강한 자를 향해 칼을 빼 들고, 비겁한 자는 분노하면 자신보다 약한 자를 향해 칼을 빼 든다.” 이 시대 비겁하고 천박한 분노들을 드러낸다. 

   

최근 한동훈이 루쉰을 소환했다. ‘정치 경험이 없다’라는 비난에 그는 “세상의 모든 길은 처음에는 길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함께 가면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응대하면서 루쉰의 말을 인용했고 이 말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했다. 국민의 힘은 “함께 가면 길이 된다!”라는 구호를 만들어 외치고 있다. 

   

한동훈이 인용한 루쉰의 <고향>은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사실, 땅 위에는 원래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런 루쉰의 말을 인용하는 한동훈을 보며 그의 인문학적 소양에 감탄한다. 적어도 그는 책을 읽는 사람이다. 

   

루쉰에게서 배우고 싶은 사상이 “중간물”사상이다. 루쉰은 사회발전을 위해 기성세대의 “중간물” 역할을 강조했다. 중간물은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다리”다. 루쉰은 “전통문화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가려면 기성세대의 중간물이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개념이 중간물의 희생이다. 기성세대가 중간물로 희생할 때 새 시대가 열린다고 했다. 

   

루쉰이 전통문화를 품은 ‘중간물’의 희생을 새 문화의 확장과 발전의 열쇠로 본 것이 새롭다. 중간물은 전통문화를 향유하는 사람의 총칭이다. 루쉰은 가을 낙엽이 썩어 새봄의 꽃을 피우는 것처럼 중간물의 희생을 통해 문화가 발전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희생이다. 기성세대와 기득권의 희생을 딛고 사회가 발전한다는 것은 성숙한 생각이요 진보적 사고다. 

   

루쉰의 ‘중간물’사상은 기독교의 십자가 정신과 같다. 십자가는 희생과 헌신의 결정체다. 현대교회가 잃은 것 중의 하나가 십자가 정신이다. 희생과 헌신을 거부하고 온갖 기득권과 영광에 노예가 된 기독교에 천박한 이기주의가 활보하고 있다. 십자가 희생이 생명을 살리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한다는 단순하고 자명한 진리를 가슴에 새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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