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무등산 신년산행
김희식
(주)건축사무소 광장 상무
신년산행으로 광주 무등산을 다녀왔습니다. 코스는 증심사-중머리재-장불재-입석대-서석대 정상-중봉-장불재-증심사 코스를 택했습니다.(왕복 5시간). 들머리인 증심사 계곡을 지나 의재 허백련미술관 앞을 지났습니다. 숲 속 안쪽으로 미술관이 단아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건물 외벽이 전면 통유리와 삼나무로 둘러쌓인 단순한 사각박스 형태의 빌딩입니다. 유리창 너머 계곡의 경치가 미술관 유리에 투영되어 한 폭의 수묵화를 보여줍니다.
허 화백이 생전에 직접 재배했다는 춘설차 밭을 지나 무등산 중턱인 ‘중머리재’로 향했습니다. ‘중머리재’로 향하는 가파른 산길 옆 나무들은 쌓인 눈 무더기로 인하여 나뭇가지들이 묵직하게 늘어져 있습니다. 계곡 주변 바위들도 바윗돌이 안 보일 정도로 눈이 많이 쌓여 있습니다. 첫 번째 고개인 중머리재를 지나 두 번째 고개인 장불재에 도착했습니다.
새해 들어서는 산을 오를 때, 정상 정복만 목표로 하지 말자, 산봉우리에 다다를 생각만 하지말고, 좌우 여유있게 돌아보며 ‘유산(遊山)’하자며 마음먹고 출발한 새해 첫 산행이었습니다. 장불재에 도착하여 잠시 앉아 사방을 돌아봅니다. 멀리 보이는 능선이 완만하고, 봉분을 엎어 놓은 듯 합니다. 날카롭지 않은 봉우리들이 편안함을 주는 산세입니다.
장불재 옛날 이 고개는 화순 이서 동복사람들이 광주를 오가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했던 지름길이었다고 합니다. 무등산을 노래한 詩가 있습니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서정주 詩, ‘무등을 보며’ 中에서).
시인이 노래한 ‘지란’이란 명칭을 찾아보니 ‘영지와 난초’를 뜻한다고 하는군요. 지난 연말 변산반도에 위치한 내변산 산행 중에 발견했던 어른 손바닥 크기의 영지버섯이 생각났습니다. ‘능울쳐 휘어드는’ 싯귀는 물살이 세차게 흐르다라는 뜻이지만, 고난한 삶의 오후 조차도 긍적적으로 바라보라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장불재를 출발, 다시 정상을 향하려는데 커다란 화강석 기념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기념비에 실려있는 글입니다. ‘좀 더 멀리 봐주십시오. 역사란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멀리 보면 보입니다. 눈앞의
이익을 쫒는 사람과 대의를 좇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의만 따르면 어리석어 보이고 눈앞의 이익을 따르면 영리해 보이지만 멀리보면 대의가 이익이고 가까이 보면 눈앞의 이익이 이익입니다.’(노무현 대통령
산상연설문, ‘시민민주주의의 전망’, 2007. 5. 19’)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기념비를 지나서 흰 눈꽃이 핀 듯한 거대한 직사각형 대형 바위들이 도열해 있는 입석대와 서석대 정상을 향했습니다. 두 곳 모두 주상절리로 불리우는 대형 바위 기둥들입니다. 입석대를 지나 서석대(瑞石臺,해발 1,100M)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흔히들 주상절리는 중생대 지질대, 백악기 후기(약 8700만~8500만년 전), 화산 폭발시 분출된 화산재가 퇴적되어 형성된 곳이라고 하지요. 무등산 응회암이 지표에서 천천히 냉각과 동시에 수축에 의해 형성된 지질구조라는 학설도 있습니다. 이곳 서석대 주상절리는 연이어 늘어서 있는 돌기둥 너비가 약 23피트에 이르는 세계적인 규모입니다. 서석대와 입석대로 구성된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명소(Mudeungsan Unesco Global Geopark)로 지정되어 있죠.
2024년 새해는 국내외 선거가 유달리 많은 해 입니다. 한국의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를 비롯하여 지구촌 각국의 선거일정이 빼곡합니다. 무려 20여 국가의 굵직한 선거일정들이 잡혀 있습니다. 1월의 대만과 핀란드 대선, 4월의 인도 총선, 6월의 멕시코 대선, 7,8월의 미 공화·민주당 대선후보 선출, 11월 미국 대선 등 세계 정세를 좌지우지할 선거일정으로 부산한 한 해가 되겠지요.
이상기후 징후와 전쟁 등으로 얼룩지고 있는 현실과 작금의 어수선한 주변의 뉴스를 떠올리며, 하산 길에 다시 찿은 장불재 기념비 앞에 섰습니다. 비문에 써 있는 ‘역사란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그럴 수록 멀리 봐 달라, 멀리 보면 보인다’라는 의미의 돌판 글씨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용의 해. 첫 산행입니다. 조선일보 LA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용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