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참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의 가벼움


홈 > 로컬뉴스 > 로컬뉴스 > 오피니언
로컬뉴스

[이우근 칼럼] 참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의 가벼움

웹마스터

이 우 근 

변호사 / 숙명여대 석좌교수 

 

옛 유대교 성전이 서 있었던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에는 지금 이슬람의 알아크사 사원이 서 있다. 지난 10월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수천 발의 미사일을 퍼부은 군사작전의 이름이 ‘가장 높다’는 뜻의 알아크사였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들의 심장 같은 종교적 상징이었는데, 예수는 그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무너질 것’을 예언했다고 한다. 실제로 서기 70년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 성전을 ‘통곡의 벽’ 일부만 남기고 깡그리 무너뜨렸다. 


예수 당시에 성전을 모독하는 발언은 사형에 해당하는 중범죄였다. 이 발언은 결국 예수의 사형판결에 죄목으로 포함된다. 시골여관 말구유에서 태어나 십자가에서 숨을 거둔 예수는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번듯한 자기 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는 나라도 없었다. 로마제국의 식민지에서 태어나 로마 총독의 손에 죽은 예수는 그 자신의 말처럼 머리 둘 곳조차 없는 소외인이었다. 소외가 철저했던 만큼 그는 모든 정치적·사회적·종교적 굴레로부터 자유로운 아웃사이더였다. 


사제의 예복을 몸에 걸쳐본 적이 없는 예수는 유대의 지배계층이나 민중으로부터 잠시라도 메시아의 칭호를 받아본 적이 없다. 사랑과 용서를 가르친 그는 종교재판에 넘겨졌지만 종교의 차원을 초월해 있었고, 독립투쟁의 무기를 든 적이 없는 그는 정치범으로 처형되었지만 정치의 영역 너머에 있었다. 침략국 로마에 세금을 바치라고 말하는가 하면, 가난한 자의 복(福)이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라 '천국을 얻는 것'이라고 가르친 예수는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민족해방자도, 정치적 메시아도 아니었다. 


예수는 기존 체제에 저항했지만, 정치혁명이나 민중해방의 깃발을 든 적이 없었다. 로마의 식민제국주의, 위선적인 종교권력, 약육강식의 경제체제…, 그 짙은 어두움 속에서 예수는 오직 ‘충만한 사랑의 세계, 소망 가득한 영혼의 나라’를 선포했다. 그것이 예수의 저항이었다. 그는 세상의 찬미와 경배를 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치 시대의 순교자 본회퍼의 말처럼, 그는 ‘타인을 위한 존재’였다.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많은 사람을 위해 내 목숨을 희생제물로 내어주려 함이다.” 예수 스스로 밝힌 성탄의 의미다. 희생제물의 출생을 흥겹고 떠들썩하게 즐거워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오늘의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헌금을 바치고 신앙고백문을 암송하기만 하면 마냥 복을 베풀고 병도 낫게 해주며, 죽은 뒤에는 천국으로 이끌어주는 ‘이승과 저승의 신통한 보장책’인가, 혹은 ‘민중의 고통 속에 죽고 민중의 의식 속에 부활한 민중 그 자체’인가? 이 세상에서 자기 자리가 없었던 예수는 그러나 죽은 뒤의 천국이 아니라 ‘지금 이 세상에 도래하고 있는 천국’을 가르쳤다.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민중이 아니라 우리 곁의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했다. 


크리스마스는 신자들만을 위한 축제가 아니다. 교회 밖 세상에 기쁜 소식이 되어야 한다. 성전종교를 꾸짖고 이웃사랑의 삶을 가르친 아웃사이더 예수의 탄생이 십자가를 향한 고난의 시작이었듯, 교회와 크리스천도 세상과 사회를 위한 고난의 짐을 짊어지고 성속(聖俗)의 바른 관계를 만들어갈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은 입술로 외치는 선교의 구호가 아니라 선한 삶으로 세상과 교감하고, 교리와 종교의식이 아니라 인격적 감화와 영적 충격으로 사회와 소통하는 데 있을 터이다. 더러운 범죄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는 부패 정치인들이 자신을 마치 정치권력에 희생된 십자가의 예수인 것처럼 꾸며대는 위선과 기만의 시절이기에 더욱 그렇다. 악마도 '빛의 천사'처럼 가장하는 법이다. 


어느 때보다도 위로와 평화의 메시지가 절실한 이때, 으리으리한 대형교회당의 화려한 성탄축하보다는 차라리 볼품없이 옹색한 시골 예배당의 초라한 자리에 성탄의 참뜻이 담겨있을지 모르겠다. 거리 곳곳에 울려 퍼지는 캐럴과 울긋불긋한 네온사인으로 흥청거리는 아웃사이더의 생일잔치라니, 참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의 가벼움 아닌가?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