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이렇지요] 내가 LA를 사랑하는 이유 - 그리피스 파크와 폴 게티 미술관
나는 로스앤젤레스를 사랑한다. 아니 로스앤젤레스 여행을 좋아한다. 이곳을 처음 여행한 것은 1973년이었다. 이 해에 대한항공은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점보여객기를 도입해서 서울↔LA 노선에 취항했다. 그전까지 한국 비행기는 DC-10 등 프로펠러기뿐이어서 몇 시간 탑승한 뒤 내리면 귀가 멍멍하였다. 지금이야 항공여행이 일반화됐지만 70년대만 해도 비행기가 국제노선에 취항할 때 첫 편 inauguration flight에는 사회 각계 명사나 기자단을 초청해서 무료 시승행사를 여는 것이 관행이었다. 나는 “세계로 뻗는 대한의 날개”라는 제목의 특집 제작을 위해 카메라맨과 함께 대한항공의 초청을 받았다.
5월 16일로 기억한다. 70년대 초 외국 출장을 가면 김포공항에 회사 동료 여러 명이 전송을 나왔고 때로 목사님 인도 하에 성도 10여 명이 나와서 장도를 축원하는 기도와 찬송을 불렀다. 비행 도중 일부변경선(date line)을 지나면 몇 월 몇 일에 지났다는 증명서를 승무원들이 승객에게 나눠주었다. 우리는 LA앰배서더호텔에 여장을 풀고 디즈니랜드, 시월드, 그리피스 천문대 등을 둘러 보았는데 나는 그리피스 천문대를 오를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첫째 산 중턱을 오르는 데 때 마침 자동 스프링클러가 길 옆의 나무에 시원스럽게 물을 뿌리고 있는 게 아닌가!(이 때만 해도 한국은 가뭄으로 기우제나 지내고 있었다). 둘째는 기자 출신 그리피스(Griffith J. Griffith)가 광산개발에 뛰어들어 큰 돈을 벌어 1882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였고 그는 1896년 12월 로스펠리스의 농장 3015 에이커(뉴욕 Central Park의 5배 크기)를 공원 부지로 로스앤젤레스시에 기부하였다.
놀라운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일반 대중을 위한 휴식, 오락, 트레일, 골프, 동물원, 박물관, 회전목마, 승마장 등 시설을 갖추되 무료로 누구나 이용토록 하였다. 그뒤 그리피스파크는 1903년 샌타모니카 아카디아호텔에서 휴가 중 피해망상으로 아내에게 총상을 입힌 죄로 San Quentin 감옥에서 2년을 보내게 된다. 출소한 뒤 그는 LA시에 두번째 크리스마스 선물을 내놓았다. 희랍극장과 과학관 건립 기금을 희사하였다. 극장은 1929년 완공되었고 그리피스 천문대는 1935년 문을 열었다. 영국 웨일스 출신의 그리피스는 사업가이자 박애주의자였다.
로스앤젤레스에 가면 내가 즐겨 찾는 곳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게티미술관이다. 아시다시피 석유재벌 Paul Getty가 1930년대부터 사모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고미술품을 위시하여 18세기 프랑스 장식예술품과 세잔느, 렘브란트, 마네, 고흐 등 유명화가들의 작품이 넘쳐 나는 곳이다. 1970년대 샌타모니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로스앤젤레스 근교 말리부 언덕에 본격적으로 건립된 폴 게티 미술관은 단순한 미술관이 아니라 도서관 연구소 등을 갖춘 복합 문화예술 공간이다. 그래서 이름도 폴 게티센터라고 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tram을 타고 올라가면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인 센터 건물들이 나타난다. 누구나 무료로 항상 관람할 수 있다.
지금 서울에선 이건희 컬렉션을 둘러 싸고 서로 자기 동네로 유치하겠다고 경쟁이 치열하다. 일단 서울 용산과 송현동(한국일보 앞 옛 미대사관 직원 숙소 자리)이 후보지로 정해진 모양이다. 재벌이 평생 모은 귀중한 작품을 기증해서 모든 국민이 향수(享受)할 수 있게 하는 일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삼성미술관 리움에 가보지 못했다. 한 달 전에 예약하고 구경을 갈 만큼 내겐 열의가 없다. 게티뮤지엄엔 예약이 필요 없다. 입장료도 없다. 그리피스파크도 언제나 누구든 무료로 이용한다. 소위 보편적 서비스(universal service)에 중점을 두고 있다. 어디에 건립하느냐보다는 이건희 미술관도 고인의 유지대로 온 국민에게 보편적 서비스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김우룡 칼럼니스트는: 중앙고, 고려대 영문과, 서울대 신문대학원을 졸업했다. 뉴욕 컬럼비아대 언론대학원을 수료했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언론학 박사를 받았다. UC버클리 교환교수, 한국방송학회 회장을 지냈다.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석좌교수, 차관급인 제3기 방송위원,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