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의 행복칼럼] 어머님 행복수첩과 삭힌 홍어
어머님댁에 가면 종종 몰래 어머님 수첩을 읽는다. 어머님 수첩은 어머님 인생장부요 행복수첩이다. 페이지마다 소중한 어머님 정보가 담겨있다. 수첩엔 다섯 아들 결혼기념일, 다섯 며느리 생일날이 적혀있다. 어떤 페이지는 어머니가 감사하는 날들, 첫째 아들 행정고시 합격한 날, 둘째 아들 목사 안수 받은 날, 둘째 미국 이민 간 날, 셋째 목사 안수 받은 날, 셋째가 담임 목사 된 날, 그리고 손자 손녀들 생일이 적혀있다. 그리고 어머님의 소소한 행복들이 적혀 있다.
몇 년 전 어머님 수첩을 읽다가 ‘삭힌 홍어’ 그리고 꾹꾹 눌러쓴 전화번호를 보았다. 궁금해서 어머님 몰래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는 ‘할머니! 둘째 아들 왔어요? 언제 보낼까요?’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여보세요! 제가 둘째 아들입니다. 누구시죠?’했더니 전라도에서 삭힌 홍어를 택배로 판매하는 아주머니란다. 그 전화로 어머님 비밀을 발견했다. 삭힌 홍어를 좋아하는 둘째가 부산에 올 때마다 전라도에서 삭힌 홍어를 주문하셨던 것이다. ‘네가 좋아하는 삭힌 홍어 준비해 놓았다!’ 하시며 환한 미소로 반겨 주시던 어머니, ‘네 덕분에 나도 삭힌 홍어 먹어 좋다’ 하시던 어머니 비밀을 발견한 것이다.
강원도 화천에서 근무할 때 사단장이 목포 출신이어서 삭힌 홍어를 처음 접했다. 처음엔 그 독한 맛에 토할 뻔 했다. 그런데 인심 좋은 사단장님과 사모님은 목포에서 삭힌 홍어가 올라오면 항상 나누어 주셨다. 처음엔 삭힌 홍어가 처치 곤란이었다. 냉장고에 넣어 두면 그 냄새가 냉장고를 넘어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온 집안이 썩는 것 같았다. 처음엔 썩은 줄 알고 버렸고, 이웃에게 주기도 했지만 나중엔 먹었다. 어머님은 아까운 마음에 드셨고, 나는 사단장님이나 사모님께 거짓말 하지 않기 위해 먹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삭힌 홍어회에 중독되었다. 삭힌 홍어가 오기를 기다리는 입장이 되었다. 서울에 근무할 때는 어머님 모시고 신길동 홍어 골목을 찾아 가기도 했고, 미국에서 한국을 방문하면 홍어 애호가(?)들과 신길동 홍어 골목 만남을 갖기도 했다.
바쁜 일정으로 홍어를 못 먹고 돌아 올 때가 있었다. 공항 탑승구 앞에서 전화 드리며 어머님께 홍어를 못 먹었다고 하소연을 했다. 말없이 듣고 계셨던 어머님은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전라도에서 삭힌 홍어를 택배로 받는 방법을 찾으신 것이다. 그리고 전화를 걸고 은행에 가서 송금을 하시고 기다려 삭힌 홍어를 준비해 놓으신 것이었다. 어느 듯 단골이 되신 것이다. 전화를 끊고 마주한 밥상에 홍어가 있었다. 전화로 주문을 하고, 아픈 다리로 은행에 가셔서 송금을 하고 택배로 받은 삭힌 홍어였다. 식사기도 하는데 목이 메었다. 감사했고 ‘이게 뭐라고? 괜히 어머님 고생 시켰구나!’ 하는 생각에 많이 죄송했다. 그래도 삭힌 홍어는 아주 맛있었다.
그날 어머님과 삭힌 홍어 추억을 나누었다. 처음 삭힌 홍어 접한 날의 추억, 홍어에 중독되어 홍어를 기다리던 날들의 추억, 삭힌 홍어 포장해서 집에 들고 갔는데 홍어를 모르는 아이들이 기겁했던 이야기 등등, 끝없는 삭힌 홍어 추억을 나누며 웃고 하루를 보냈다. 경영난으로 아주머니가 홍어 택배를 그만두었다. 수소문해서 찾아간 부산의 한 식당은 가격도, 맛도, 서비스도 아니었다. 어머님 뜻이 하도 강해 다시 가지 못했다. 한동안 삭힌 홍어를 함께 먹지 못했다. 인터넷으로 동래에 있는 삭힌 홍어 식당을 찾았다. 어머님 모시고 삭힌 홍어 먹을 생각에 입안에 침이 고인다! 어머님 수첩에 홍어 식당에 다녀 온 날이 적혔으면 좋겠다. 어머님 행복 수첩에 한 줄 더 늘어날 것 같은 기대에 콧노래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