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기독교 인문학] 2024 한국 로잔대회의 성과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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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의 기독교 인문학] 2024 한국 로잔대회의 성과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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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한국 로잔대회가 끝났다. 로잔운동은 WCC 운동에 대한 복음주의 진영의 반작용으로 시작되었다. 1968년 웁살라에서 열린 제4 WCC 총회는 선교의 목표를 ‘인간화’로 규정했다. WCC가 구원의 개념을 인간화로 정의한 것이다. 이를 수용할 수 없었던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대책을 골몰했다.

   복음적인 구원관 선언을 위해 복음주의자들이 뭉쳤다. 세계적인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목사와 영국의 기독 지성 존 스토트(John Stott)박사, 풀러 신학교 설립자 해럴드 오켄가(Harold John Ockenga)박사, 복음주의 언론인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 창간자 칼 헨리(Carl Henry)박사, 그리고 행동하는 신학자 프랜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목사 등이 중심이 되어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복음주의적인 선교대회로 모였다.

   이 모임이 제1차 로잔대회다. 1차 로잔대회 공식 명칭은 제1차 세계 복음화 국제대회(The First 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 50개국 2,400명의 지도자가 모였다. 한국에서는 한경직 목사, 조동진 목사, 조종남 목사, 김준곤 목사등 66명이 참석했다. 1차 로잔대회의 결과물이 로잔언약(Lausanne Covenant)인데 WCC 웁살라 대회의 정신을 반박한 것이었다.

   로잔 언약은 종교 다원주의를 배격하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임을 천명했다. 로잔 언약 3항에서 “우리는 모든 종류의 혼합주의를 거부하며 그리스도께서 어떤 종교나 어떤 이데올로기를 통해서도 동일하게 말씀하신다는 식의 대화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손상하므로 거부한다”라고 선언했다. 이는 종교간 대화를 통한 상호 이해가 선교의 중요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WCC의 입장과 명확한 차이를 보였다.

   이후 로잔운동과 WCC는 각각 발전과 확장을 도모했다. 1973년 방콕에서 열린 CWME 대회에서 WCC는 구원의 내용을 ‘개인구원’에서 ‘사회구원’으로 바꾸어 정의했다. WCC가 선교를 복음 운동이 아닌 사회운동으로 정의하자 로잔대회는 WCC의 결정을 의식하며 다시 개인구원을 강조했다.

   복음주의 진영에서 로잔 운동(The Lausanne Movement)은 굉장히 중요하다. 현재 복음주의는 세계복음주의 연맹(WEA, World Evangelical Alliance)과 로잔운동이 함께 이끌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세계복음주의 연맹은 자유주의와 근본 양극단을 극복하고 복음의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 제임스 패커, 존 스토트, 오켄가, 칼 헨리 등이 주도하여 결성했다.

   로잔운동은 기본정신을 상실했다는 비판과 구설수가 있었다. 2차 마닐라 로잔대회는 신사도 운동을 후원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마닐라 대회에 신사도 운동 지도자들인 피터 와그너, 신디 제이콥스 등이 주제 강사로 참가했다. 3차 로잔대회 케이프타운 서약은 WCC 에큐메니컬 선교 신학의 영향을 받아 사회적 관심과 복음을 통합해 복음을 변질케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국에서 4차 로잔대회가 열린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규모와 성과에 치중한 나머지 아쉬움도 남겼다. 4차 로잔대회 서울 선언은 세계적 쟁점인 젠더 문제에 대한 구체적이고 단호한 태도의 부족과 복음주의적 성경관 표명의 부족 등이 아쉽다. 그러나 세계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모여 시대적 사명을 고민하고 전도와 예배의 가치를 천명한 것은 값지고 귀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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