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기독교 인문학] C.S. 루이스의 특별한 전도
C.S.루이스는 회심한 직후부터 전도하기를 소원했다. C.S. 루이스는 자신의 대표작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이래, 믿지 않는 이웃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봉사, 그리고 아마도 유일한 봉사는 모든 시대에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공통으로 믿어 온 바를 설명하고 수호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라고 밝힌다.
C. S. 루이스가 전도에 충실했다는 것은 다양한 자료에서 발견된다. 우선 그는 몇 번의 대중 전도 활동을 했다. 제2차 대전 초기에 영국 공군 부대 순회강연을 통해 전도했다. 둘째로 1941년부터 1944년까지 BBC 방송국에서 방송 강연을 하며 기독교를 소개했다. 이 방송 강연으로 루이스는 영국인 전체에게 복음을 전했다. 셋째로 루이스는 자신이 저술한 책을 통해 전도하였다.
도르셋(Dorsett)은 C.S. 루이스는 문학적 전도자(Literary evangelist)라고 주장했다. 루이스도 자신이 저작한 책들 대부분이 전도를 위한 책이라고 말했고, 이 점에서는 루이스 자신은 기독교의 진리를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가라는 주장을 했다. 또 루이스는 ‘기독교와 문학’(Christianity and Literature)이라는 소 논문에서 “그리스도인은 거듭나는 순간부터 영혼 구원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라며 전도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C.S. 루이스의 오랜 친구요 그의 개인 변호사였던 오웬 바필드(Owen Barfield)는 루이스가 “모든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라고 했다고 전한다. 이를 뒷받침 하듯 ‘기독교와 문화’(Christianity and Culture)라는 글에서 루이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일이 영혼을 구하는 일이고,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이다.”라고 했다.
우리가 잘 아는 명사들이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와 그의 작품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였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 특별보좌관으로 일하다가 워터게이트사건에 연루되어 실형을 선고 받았던 찰스 콜슨도 그런 사람이다. 그는 ‘순전한 기독교’를 읽고 회심했다. 그는 출소 후 교도소선교회(Prison Ministry)를 만들어 전 세계 재소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평생 헌신하였다.
나아가 미국의 게놈 프로젝트를 총괄했던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는 ‘신의 언어’에서 자신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는 데 C.S. 루이스가 큰 영향을 주었다고 밝혔다. 현재 대표적인 복음주의 진영의 기독교 변증가인 오스 기니스(Os Guiness)박사도 루이스의 도움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로드맨 프리들랜드(Rodman Fridland)가 1958년 당시 미국 장로교 선교사 415명을 대상으로 시행했던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설문조사에서 “당신이 선교사가 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누구입니까?”라는 항목에 응답한 415명의 현장 선교사 중에 50%가 ‘C. S. 루이스의 영향으로 선교사가 되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루이스의 영향력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1986년 휘튼 대학교 메리온 웨이드(Marion Wade) 센터에서 “당신, 혹은 당신이 아는 사람이 C. S. 루이스와 그의 책의 영향으로 인생의 큰 변화를 경험했다면 그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라는 광고를 미국 기독교 신문과 잡지에 실었다. 광고 후 많은 ‘간증’이 도착했다. 특히 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고백이 엄청 많았다. 루이스의 문서 전도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