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도시재생 유감(有感)
김희식
(주)건축사무소 광장 상무
한국에서 항공편으로 한두 시간 거리인 일본 큐슈 오이타현을 십여 년에 걸쳐 지금까지 열댓 번 드나들었습니다. 주말을 낀 연휴나 휴가 때면 짧은 기간이나마 찾아가기를 선호하는 지역이었습니다. 산과 바다의
접근이 쉽고 온천 등 쉴 수 있는 여건을 갖춘 곳입니다. “책 읽기보다 훨씬 좋은 건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 이라는 작가 백영옥의 말처럼, 같은 지역을 반복해 찾아가는 여행법도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냥 지나치던 골목도, 풍물도, 사람들도, 근현대 건축물도 자세히 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여행길에는 오이타은행 지점, 다운타운 내 미술관(OPAM:Oita Perfectural Art Museum) 등 도시재생 건축물을 중심으로 둘러봤습니다. 벳부에서 출발한 JR열차에서 오이타역을 빠져나오자 역앞 광장에는 보차도 경계 겸 더위와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초대형 지붕이 덮인 보행로(Canopy)가 눈에 띕니다. 보행자나 승하차하는 승객을 위한 배려로 보입니다. 길 건너 도로변에 아담한 적벽돌 건물이 보입니다. 오이타은행 아까렌카(적벽돌)館입니다. 113년 전에 지은 2층짜리 건물입니다. 도시재생을 표방한 건물로서 건물 뼈대는 그대로 놔두고, 내부를 고쳐 사용하는 사례입니다.
변색된 적벽돌 벽체와 창틀 주변의 반토막 적벽돌이 질감의 차이로 시각적인 효과를 보여줍니다. 업라이트 조명기구의 불빛이 적벽돌에 반사되면서 빈티지 효과를 냅니다. 내부 콘크리트 열주(列柱)의 골재들도 오랜 세월을 견딘 채 노출되어, 거푸집을 떼어 낸 흔적과 함께 멋을 살리고 있습니다. 실내 한 켠 카페에서는 갓 뽑아낸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바깥 쪽 뒷마당의 회랑도 대리석 기둥과 함께 잘 보존돼 있더군요.
건축가 유현준은 ‘도시 재생, 생명의 사이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변화하는 환경에 건축이 적응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환골상태의 방식으로 기존의 모든 건축물을 모두 철거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재개발, 재건축 방식이다.(한국에서 즐겨하는 방식). 다른 하나는 기존의 건축물을 되도록 유지하면서 재생하는 방식이다. 후자의 경우를 도시재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재생이라는 말에서 보이 듯이 도시재생은 기존의 건물을 다시 사용하는 것이다. 하드웨어를 유지한 상태에서 건축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가 업데이트 되어야 한다.
예컨대, 서울 북촌의 경우를 살펴보자. 북촌은 서울의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주거지역을 말한다. 중정형인 북촌은 일제 강점기 때 집장사가 지은 주택단지이다. 이후에 80년대를 거치면서 용적율 상향조정 및 한옥보존지구로 지정, 한옥을 철거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후 주민들은 한옥을 이용해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어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거나 전통공예품 공방을 유치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로 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핫플레이스가 되었다.”(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107쪽, 을유문화사, 2016).
오이타 은행이나 서울의 북촌 한옥지구가 성공적인 도시재생, 레토르 건축의 사례라면, 길 건너 오이타 현립미술관 지역은 기존의 구 시가지를 재개발한 도시재생의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미술관과 함께 NHK방송국, 호텔 닛코가 한 블록 안에 연계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세 건물의 공용공간을 함께 드나들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건물들은 도심도로 위를 관통하는 육교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미술관 2층 한 가운데에는 어린이 그림, 공예교실을, 3층 중정에는 자연채광이 가능한 실내 화단을 배치하는 등 ‘공간(空間)이 사람에게, 사람이 공간에게 신뢰를 표시한다’는 느낌도 줍니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경기도 분당, 일산, 산본 등 노후된 수도권 1기 신도시 지역의 수만 가구가 재건축 ‘선도지구’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향후 신도시 재건축, 재개발에서는 1인 가구 증가,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 이에 따른 임대수요 등도 고려해야 되겠죠. 새롭게 건설될 신도시도 일정 기간 후, 또다시 노후되어 철거해야 한다면, 애당초 평면이나 구조를 보강 설계하여 고쳐쓰기에 용이하도록 ‘도시재생 가변형 설계’를 반영하면 어떨까요. 사회적 비용절감, 폐기물 감소, 친환경 지속가능에 한 몫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