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한 부친 기도로 4남1녀 모두 목회자가 됐지요"
남가주목양교회의 안신기 목사는 "말씀을 사모하고 교회 중심의 삶을 사는 성도들의 모습에서 은혜를 받는다"고 말했다.
믿음의 일꾼과 건강한 사역지를 찾아서 12.남가주목양교회 안신기 목사
성결교회 평신도 지도자 안형효 장로
안목사 등 자녀 '믿음의 명문 가문'만들어
열정적 군종 거쳐 대구선 전도운동 주도
남가주목양교회 안신기 목사는 신앙의 집안에서 성장했다. 부모님의 기도와 신앙의 모범을 먹고 자랐다. 안 목사의 아버지 안형효 장로는 한국 성결교회에서 잘 알려진 평신도 지도자다. 황해도 해주 학자 집안 출신인 안 장로는 어린 시절 교회에 출석하였다. 20대 초반에 교회를 지키는 든든한 일꾼이 되어 교회 새벽기도를 알리는 새벽종을 치는 헌신자였다.
안 장로는 월남 후 인천 송현성결교회를 열심히 섬겼고, 금곡교회를 개척했다. 그의 신앙과 인격을 인정받아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장로가 되었다. 안 장로는 섬김과 헌신에 모범이 되었다. 당시 금곡 성결교회는 부흥사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강달희 목사가 담임 목회자였다. 힘을 다해 주님의 교회를 섬겼던 안 장로는 4남 1녀의 자녀들 모두를 목회자로 세웠다.
첫딸 에스더 황 사모는 황영대 목사의 사모다. 장남 안성기 목사는 서울 상암동 송산교회 담임 목사다. 둘째가 안신기 목사이고, 셋째 안충기 목사는 남가주 임마누엘 펠로우십교회 담임이며 넷째 안만기 목사는 탈봇 신학교를 졸업하고 안수를 받아 남가주 동신교회에서 일한다. 아버지 안 장로의 기도대로 모두 목회자가 되어 믿음의 명문 가문을 이루었다.
안신기 목사는 주님의 부르심을 확인하며 서울신학대학에 진학했다. 목회자의 어려움을 아는 모친의 반대가 있었지만 부르심에 순종해 신학교행을 택했고, 군종목사 후보생 시험에 합격하여 방황이나 멈춤이 없이 목회자 수련을 마치고 안수를 받고 군종목사로 입대했다. 전 후방 부대 군종 목사로 4년간근무한 안 목사는 열정적인 군종활동으로 보람찬 군인교회 목회를 했다.
군대의 마지막 부대가 대구지역이었다. 전역하며 대구지역 작은 교회를 맡아 목회를 시작했다. 10여 명이 모이는 작은 교회를 맡아 목회하며 성장과 부흥을 경험했다. 교회 건축도 했고, 교단 전도단을 만들어 열심히 전도활동을 했다. 거리와 병원 전도에 큰 결실도 있었다. 전도의 열매는 교회의 성장이라는 현실적 성과를 얻게 하였고 내적으로는 목회의 보람을 주었다.
힘차게 목회하던 안 목사는 18년의 정든 목회 현장을 뒤로 한 채 미국으로 왔다. 미국에 오면서 안 목사의 실력과 경륜을 인정한 미성대학 안용식 총장이 행정처장으로 임명했다. 안 목사는 미성대학 행정처장으로 일하면서 한사랑교회를 담임했다. 이렇게 시작한 한사랑교회 14년 목회는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영혼들과 함께 뒹굴며 지낸 세월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담임을 맡게 된 남가주목양교회는 건강한 이민교회다. 베이커스필드라는 말씀과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들의 건강한 공동체다. 성도들은 주일 예배를 사모하고 일찍 교회에 나와 예배를 준비한다. 말씀과 은혜를 사모하고 교회 중심의 삶을 사는 성도들의 모습이다. 안 목사는 목양교회 담임 목사로 행복하다.
강훈 종교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