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이렇지요] 동시다발로 대학이 무너지고 있다
지금 서울에서는 벚꽃 피는 순서로 대학이 망한다고 아우성이다. 지난 20년 동안 대학은 양적으로 팽창을 거듭해 왔지만 학령 인구는 해마다 크게 줄어 수요·공급 체계가 무너진 지 오래다. 30년 전만 해도 고3 수험생이 80만 명에 달했지만 올해는 그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대학의 위기는 동시다발로 진행되고 있다. 무엇보다 교육행정의 난맥 탓이 크다. 김대중 정부 시절 매년 3~7개의 4년제 대학 설립을 인가했다. 게다가 대학은 자회사인 양 “아들 총장, 아버지 이사장” 아니면 “남편 총장, 아내 이사장”식 족벌체제로 운영됐다. 또 '대학원 대학교'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학부과정 없이 석사, 박사과정만 운영하는 소규모 독립대학원들이 서울과 경기지역에 40개 안팎으로 난립해 있다. 지금 유수한 대학의 대학원조차 정원 채우기가 쉽지 않은데 교수진이나 교육환경이 부실한 대학원대학교가 학위장사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논문 제목의 "회원 유지"를 “member Yuji”로 쓴 엉터리 박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2022학년도 지방대학의 신입생 미달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봄 꽃 가득 핀 캠퍼스에 찬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는 표현이 가슴에 와 닿는다.
지방 거점 국립대인 경북대, 부산대, 경상대, 충남대, 전북대 등도 미달사태를 겪었으며 대구대, 동명대, 원광대, 경남대, 카톨릭관동대, 상지대 등 이름있는 많은 대학들이 신입생 채우기에 급급하다. 일부 지방대학들은 신입생들에게 노트북 따위를 선물로 준다고 유인하고 있지만 정원은 차지 않고 있다. 심지어 교수들이 관내 고등학교를 방문해서 신입생 유치에 발벗고 나선다. 지원 학생 1인당 담임교사에게 금품을 건네는 대학이 있다고 하니 사태는 심각하다.
대학이 피폐해진 또 다른 원인은 아니러닉하게도 총장직선제다. 이사회나 정부의 일방적인 총장 임명을 막기 위해 많은 대학들이 총장직선제를 채택하고 있다. 얼핏 민주적인 듯 싶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예를 들면 철학교수는 공과대나 약대 교수와 교류가 전혀 없다. 더욱이 캠퍼스가 서울과 지방으로 2원화 돼 있는 경우 이건 완전히 다른 대학이다. 무얼 보고 뽑는가? 임금, 후생복지를 잘 해주겠다는 후보, 아니면 마당발 후보가 항상 유리하다. 그 결과 지난 13년 동안 등록금은 동결됐지만, 직선제 학교의 교직원 급료는 계속 올라갔고 반대로 연구비와 장학금 그리고 교육시설은 낙후돼 왔다. 이제 대학도 시장원리에 맡겨야 한다.
이런 판에 전문대학의 교명이 대학교로 개칭되고 학장은 총장으로 격상돼 혼란스럽다. 교육부는 '대학교' 명칭을 쓰더라도 영어로는 university는 안 된다고 이중잣대를 내밀었지만 college 혹은 institute로 표기하던 전문대학은 어느새 university로 둔갑했다. 어떤 대학은 university college[대림대학], college university[계명문화대학]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영국에 University College London, Dublin 등이 있기는 하지만 둘을 붙여 쓰는 것은 과욕이다). 일반적으로 university는 종합대학을, college는 단과대학을 뜻한다. 물론 예외가 많다. 일본 동경대학은 ‘대학’이고, 아이비리그 다트머스 Dartmouth는 그냥 college다. 또 신학대는 seminary. 음악대는 conservatory, 사관학교는 academy 등 다양하다. 특히 세계적인 명문 MIT와 칼텍의 명칭 역시 모두 institute다. 조지아텍(Georgiatech)이나 칼텍(Caltech)의 tech는 technology의 준말이지만 지금 와서는 텍(tech) 자체가 이공계 기술 및 컴퓨터 대학교를 뜻하는 보통명사가 됐다.
어떤 사회든지 필요한 인재와 기술 그리고 아이디어의 산실은 대학이어야 할 터인데 한국의 대학들은 속 빈 강정이 돼 가고 있다. 대학의 위기는 국가의 위기다.
김우룡 칼럼니스트: 중앙고, 고려대 영문과, 서울대 신문대학원을 졸업했다. 뉴욕 컬럼비아대 언론대학원을 수료했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언론학 박사를 받았다. UC버클리 교환교수, 한국방송학회 회장을 지냈다.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석좌교수, 차관급인 제3기 방송위원,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