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세 유권자 “새벽 6시 25분에 와서 기다렸어요”
LA총영사관 2층에 마련된 투표소가 23일부터 문을 열었다. 남가주 지역 1호 투표자가 된 김생철(오른쪽 모자 쓴) 씨가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치고 있다. /백종인 기자
제20대 대선 재외국민선거 첫 날
LA총영사관 추운 날씨 속 ‘한 표’
사진 ID·영주권 원본 등 지참해야
OC·SD 투표소는 25일~27일 설치
아직 어스름한 녘이다. 오전 6시 25분. 기온이 40도대로 떨어진 쌀쌀한 아침이었다. 윌셔길 영사관 출입문 앞에 큼직한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다저스 야구모자에 스웨터 차림이다. LA에서 보기 힘든 목도리가 눈에 띈다. 손에는 한국 여권을 꼭 쥐고 있다.
한참 뒤. 역시 이른 출근길의 영사관 직원이 길 위에 서있는 그를 발견했다. “어휴, 벌써 나오셨어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안에 들어와서 기다리세요.” 추위를 걱정해 황급히 문을 따고 1층 엘리베이터 앞으로 모신다. 의자까지 마련해줬다. 덕분에 찬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제20대 대통령을 뽑는 재외국민선거가 23일부터 개시됐다. 남가주 지역에 몰아닥친 한파 속에서도 LA총영사관에는 아침 일찍부터 소중한 권리를 행사하려는 한인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오전 8시 정각. 공관 2층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재외선거관리위원회 김범진 위원장의 선언과 함께 기다리고 있던 10여 명의 유권자들이 기표함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번 재외선거 남가주 지역 1호 투표자는 오전 6시 25분부터 1시간 반을 넘게 기다린 다저스 모자의 김생철 씨다. 올해 87세라는 김 씨는 “이렇게 큰 국가적 행사에는 꼭 참여하는 것이 국민 된 도리이자 권리”라며 “집에 있는 손주들에게도 할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서둘러 투표장으로 향했다”고 밝혔다. 타운 내 6가에 거주한다는 그는 “40년 넘게 미국에 살면서 모국을 잊은 적이 없다. 지난 번 대선 때도 참여해 한 표를 행사했다”고 기억했다.
LA총영사관 지역은 지난 1월 재외선거인 833명, 국외부재자 7838명이 유권자 등록을 완료해 영구명부 등재자 2109명을 합해 모두 1만780명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영사관측이 추정하는 관할지역 선거권자는 18만4681명인데, 이번에 신고‧신청된 비율은 5.84%에 그쳐, 전세계 평균(11.51%)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날은 하룻동안 655명의 유권자가 투표에 참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LA총영사관(3242 Wilshire Blvd, Los Angeles, CA 90010)은 이날 시작돼 28일까지 엿새 동안 운영되는반면, 오렌지카운티 한인회관(9876 Garden Grove Blvd, Garden Grove, CA 92844)과 샌디에이고카운티 한인회관(7825 Engineer Rd, San Diego, CA 92111) 투표소는 25일부터 시작돼 27일까지 사흘 동안만 운영된다. 투표소 운영시간은 오전 8시~오후 5시다.
재외선관위는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ID)과 (국내 주민등록이 없는 재외선거인의 경우) 영주권 또는 비자 원본을 제시해야 한다”며 “신분증이나 영주권 등의 사진 또는 이미지 파일을 가져와서 투표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해달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즉 플래스틱으로 된 (캘리포니아) 운전면허증이나 영주권 등 ‘원본’을 지참해야 하며 휴대폰에 담긴 신분증 사진으로는 안된다는 의미다.
미주 지역 재외국민 투표는 LA 외에도 수도 워싱턴DC를 비롯해 뉴욕,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시카고, 애틀랜타 등지에 마련된 투표소에서도 이날부터 진행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대선 투표에 등록한 미국 영주권자와 일시 체류자 등 재외선거 유권자는 모두 5만3073명이다. 19대 대선 당시 등록 유권자(6만8224명)와 비교하면 22.2% 감소한 수치다.
백종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