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이 아르헨티나에서 숨어 살다가 체포되었다. 아이히만은 철저하게 위장했지만, 이스라엘 특수요원의 집요한 추적 끝에 붙잡혀 예루살렘으로 압송되었다. 그는 기소되어 1961년 4월에 이스라엘에서 공개재판을 받았다. 그가 재판을 받는다는 뉴스를 듣고, <뉴요커> 기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이스라엘로 날아가 재판 과정을 취재했다. 유대인으로 학살을 경험한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추악한 악마’의 모습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며 아렌트는 경악했다. 재판정에서 만난 아이히만은 아렌트의 기대와는 달리 진정으로 순박한 남자였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과 자신이 목격한 경악을 담은 책<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을 출판했다. 이 책은 두 가지 화두로 ‘악의 평범성’과 ‘생각의 게으름’을 던졌다. 평범한 사람 아이히만이 엄청난 죄악을 범할 수 있다. 유대인 학살이라는 엄청난 범죄는 아이히만의 생각 부족에서 출발했다. 이런 논지다.

   아렌트가 보기에 아이히만은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중년 남성에 불과했다. 자상한 가장이며 친절한 이웃이었고, 근면 성실한 관료였다. 나치 이념에 열광하는 광신도도 아니었고 유대인을 혐오하여 가스실로 보낸 악마는 결코 아니었다. 그는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며 명령은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되풀이했다. 그는 성실히 명령을 따랐을 뿐이었다. 단지 아무 생각 없이!

   아렌트는 지극히 평범하고 선량한 아이히만이 유대인을 잔악하게 학살한 이유를 그의 ‘생각의 부재’에서 찾았다. 아이히만은 히틀러 명령 수행의 결과를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히만은 별생각 없이 규칙과 명령에 성실하게 따랐다. 그는 주어진 상황에 맞게 명령에 복종한 성실한 군인이었다. 이런 공무원, 이런 교사, 이런 검사, 이런 정치인, 이런 의사, 이런 판사 그리고 이런 목사가 우리 주변에 있다.

   아이히만은 결코 잔인한 사람이 아니었다. 무서운 악의 화신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양심적인 사람이라고 강변했다. 그는 “명령 받은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요컨대 아이히만은 그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양심적’인 사람이었다. 양심적인 사람의 천인이 공노할 악행을 확인한 아렌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렌트의 경악이 오늘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생각 없이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 된 아이히만은 우리에게 경고와 교훈을 던진다. 생각의 부족이 가져오는 불행을 가까이서 본다. 최근 명품 백을 들고 영부인을 만난 목사의 청문회를 보며 너무 서글펐고, 너무 부끄러웠다. 또 국민의 건강을 돌보는 군의관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올리고 해당 군의관의 결혼 청첩장을 올리는 등 한심한 작태나 의료 대란에 정부와 의료계의 무책임한 고집을 보며 생각의 부족을 생각한다. 제발 그들이 생각하기를 바란다!

   그리스도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도 깊게 생각해야 한다. 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생각을 잘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늘의 기준을 생각하고, 주님 앞에서 서야 할 심판을 생각해야 한다. 건강한 신앙생활은 건강한 생각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숙고해야 한다. 선택과 처신에서 또 사역 후 결산의 과정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