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칼럼] 6월에 드리는 기도
한남옥
시인/ 영락교회 권사
6월이 되면 우리 가족사와 더불어 조국의 아픔이 생각난다. 우리 시댁은 1.4후퇴 때 이북에서 내려온 피란민이다. 시부모님이 피란 나올 때 10살 먹은 큰딸이 있었다. 부모님 말씀으론 유난히 영리하고 예쁘고 착했단다. 1.4후퇴 때 온 가족이 피란할 때 그 딸은 아픈 할머니와 함께 있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놔두고 내려왔단다. 곧 고향으로 돌아갈 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고향으로 돌아갈 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부모님께선 돌아가실 때까지 그 딸을 못 잊어 시시로 울면서 기도하셨다.
1983년 KBS방송국에서 이산가족찾기 운동을 했다. 가족들은 장기간의 생방송 내내 혹시나 하고 가슴에 피켓을 달고 찾았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혈육을 만나 얼싸안고 가슴 속 오랜 설움을 쏟아내며 통곡한다. 방송을 보는 사람이나 현장에 있는 사람이나 함께 우느라 온 나라가 들썩들썩했다. 부모님은 끝내 그 딸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아마 이북에서 못 나온 것 같다. 부모님 아픔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전쟁은 이렇게 모든 것을 파괴하고, 많은 사람에게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남긴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가 참혹한 전쟁 가운데 있다. 피난민이 어마어마하다. 혹자에 의하면 1000만 명에 다다를 것이라고 한다. 이 피란민들은 다 어디로 흩어지고 있을까. 18세 이상 남자들은 전쟁터에 남아있으니 가족과 헤어진 것이다. 주변 유럽 국가에서 어려움에 빠진 난민들을 돕고 있긴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러시아가 제발 돌아서길 기도한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는 일제에 대항할 아무런 힘이 없었다. 그들은 우리 국민을 개조하려고 우리말도 못쓰게 하고 식민지배를 36년간이나 했다. 해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6.25전쟁으로 참혹한 시절을 겪었다. 연약한 가운데 있었지만, 독립을 위해 애쓰던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 어두움 속에서 하나님께 울부짖는 기도를 들어 주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모세처럼 기도하는 군종 목사님들이 납치당하고, 전사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듣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국민은 물론이고 전 세계 기독인들이 기도하고 있다. 성령의 바람이 불고 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이 전쟁을 선한 길로 인도하시리라는 믿음이 간다.
토요 새벽 예배 중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되기를 기도하는 중에, 우리 나성영락교회 1대 담임목사님이었던 김계용 목사님을 떠올렸다. 목사님은 1950년 6.25전쟁 때 처자식과 헤어졌다. 50년 만에 미국에서 북한방문을 하셨던 목사님이 평양 도착 사흘 만에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목사님의 가정, 목사님의 외로운 생활 그리고 갑작스러운 죽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전쟁의 후유증은 이렇게 참혹하게 오래 이어진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데 담장에 나팔꽃들은 환하게 웃고 있다. 나팔꽃의 꽃말은 기쁜 소식이란다. 저들이 만들어 놓은 꽃밭에 폭탄을 쏟아붓는 러시아, 자기의 꽃밭을 지키려 항전하는 우크라이나, 저들 눈물의 기도 새끼줄 따라, 나팔꽃들 큰 입 벌려 전쟁의 종식이라는 기쁜 소식 알리길 기도한다. 6월에 되뇌는 간절한 기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