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디지털화폐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전자화폐,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를 둘러싼 세계 각국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미국 의회는 청문회를 열었고, 연준은 보고서를 곧 내놓을 계획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전 세계 중앙은행의 86%가 CBDC 관련 연구나 개발, 실험 등을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화폐는 세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신용카드처럼 고객의 현금자산을 기반으로 일반화폐럼 사용하는 전자화폐 또는 디지털화폐가 있다. 둘째로는 국가나 중앙은행이 아닌 민간분야에서 발급하는 비트코인 같은 가상자산이 있다. 세 번째가 바로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법정 디지털화폐다. 액면가가 정해져 있어서 비트코인 같은 가상자산과는 다르다. 물론 ‘분산원장 기술’이 적용된다는 점은 같다. 거래 정보 기록은 특정 기관에 있는 서버가 아니라 공유 네트워크에 분산해 참가자들이 공동 관리한다. 법정 디지털화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체가 본원통화라는 점이다. 현재 금융 시스템의 기반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현금이다. 이른바 본원통화다. 중앙은행이 본원통화를 발행하면 이를 근거로 은행들이 유동성을 만들어낸다. 신용카드 같은 것들은 금융기관이 공급하는 유동성을 디지털화해 쓰는 데 불과하다. 하지만 CBDC는 국민 각자가 중앙은행에서 발행한 돈을 직접 받아 쓰는 형식이 된다.
세계 주요국 가운데서는 중국이 가장 적극적이다. 중국은 지난해부터 일반 시민에게 ‘디지털 위안화’를 나눠주고 시범운영을 하고 있다. 올해 3월에는 청두에서 20만 명에게 돈을 나눠주고 온·오프라인 매장 1만여 곳에서 실제로 쓰도록 하기도 했다. 베이징에서는 지난달 30일부터 지하철을 탈 수도 있다. 디지털 위안화는 전자지갑과 비슷하다. 인민은행에서 스마트폰으로 내려받은 앱에 디지털 위안화가 들어가 있다. 가게에 비치된 QR코드를 찍으면 전자지갑에서 돈이 빠져나간다. 인터넷에 연결할 필요도 없다. 휴대전화끼리 갖다 대면 계좌이체도 가능하다. 중국의 적극적인 디지털 위안화 추진이 단순히 ‘거래의 편리함’만을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일부에서는 중국 중심의 국제 경제권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기도 한다. 달러는 군사력 이상의 강력한 미국의 힘이다. 미국만이 발행할 수 있는 달러는 기축통화로서 미국 금융 패권의 배경이다.
국제결제은행(BIS)통계에 따르면, 현재 국제 외환거래에서 달러를 쓰는 비율은 88%다. 위안화는 4%에 불과하다. 중국도 해외 거래를 하려면 결국 달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달러를 쓰는 한, 미국은 언제든 중국의 해외 거래를 추적하고 자금 흐름을 차단해 금융 제재를 가할 수 있다. 중국으로서는 불만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디지털 위안화의 국제화는 먼 훗날의 일이다. 당장은 가능하지 않다. 우선은 디지털 위안화가 어떤 방식으로 ‘국경’을 넘을지도 명확하지 않다. 중국이 추진하는 법정 디지털화폐의 목표는 일단 암호화폐나 민간 전자 지불수단의 대체재다. 디지털 위안화는 인민은행이 직접 발행하고 관리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용자의 자금흐름 등 거래 이력 정보가 한 곳에 집중된다. 발행이나 관리에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 중국 정부로서는 큰 비용 없이 경제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점 때문에 CBDC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파괴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중국은 내년 2월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외국인 선수들에게 디지털 위안화를 지급하려고 한다.
미국은 일단 도입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이미 달러 제국이 구축돼 있는데 굳이 디지털 달러를 서둘러 도입해야 할 이유는 없다. 중국의 적극적인 모습이 거슬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관심은 제한적이다. 연준의 파월 의장은 “CBDC는 현금, 은행 예금의 대체재보다는 보완재로서 이상적으로 기능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국에서도 단기간에 CBDC가 발행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한국은행은 8월부터 모의실험에 나설 계획이지만, 발행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연구가 상당히 진행된 나라 대부분은 금융 인프라가 열악한 개발도상국들이다. 세계 최초로 CBDC를 도입한 바하마가 대표적이다.
김상철 칼럼니스트: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MBC TV 앵커와 경제전문기자, 논설위원, 워싱턴 지국장을 역임했다. 인하대 사회과학대, 성균관대 언론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했다. 현재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