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상식] 세계 거시경제의 거장 스탠리 피셔

오신석 CPA
오신석 회계그룹 대표
2025년 5월 31일, 세계경제의 설계자 중 한 명이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81세. 스탠리 피셔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부의장이자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 국제통화기금(IMF) 제1부총재, 그리고 MIT 교수로 활동했던 그는 학문과 정책의 경계를 넘나들며 전 세계 거시경제의 방향성을 제시해 온 인물이었습니다.
스탠리 피셔는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나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세계무대에 오른 보기 드문 지성인이었습니다. 런던정경대(LSE)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친 뒤, MIT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당시 경제학계의 거장 폴 새뮤얼슨과 로버트 솔로우로부터 직접 수학했습니다. 그가 처음 매료된 것은 1930년대 대공황이라는 거대한 충격에 맞서 경제학이 세계를 어떻게 구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큰 질문에 관심이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MIT에서 오랜 기간 교수로 재직하며 피셔는 수 많은 후학들을 길러냈습니다.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 유럽중앙은행 총재 마리오 드라기, 미국 재무장관 로렌스 서머스, 일본은행 총재 우에다 카즈오, IMF 수석이코노미스트 블랑샤르와 로고프 등이 그의 제자였습니다. 피셔가 공동집필한 『Macroeconomics』 교과서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학생들에게 거시경제의 기초를 가르치는 표준교재가 되었으며, 이는 그의 학문적 유산을 잘 보여줍니다.
정책 현장에서도 그는 언제나 실천하는 학자였습니다. 1980년대 이스라엘의 고인플레이션과 통화위기 해결을 위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동 경제자문단에 참여하였고, 이후 IMF 제1부총재로서 멕시코, 러시아, 한국, 태국 등 신흥국 위기 해결에 앞장섰습니다. 특히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 대한 긴급 자금지원의 실무를 지휘하며 위기관리의 정교한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단기적 금융 안정성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인 구조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단기적 자금지원이 아닌, 정부보조금 축소, 환율 안정화, 통화긴축, 임금과 물가 억제 등 다각적 접근을 요구한 것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조치였습니다. 피셔는 위기 한복판에서도 이론과 실무, 정치와 시장의 균형점을 정확히 파악할 줄 아는 보기 드문 인물이었습니다.
2005년부터는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로서 금융위기 전후 세계에서 가장 유연한 금리정책을 시행하였고, 위원회 중심의 정책 결정 구조로 개편하는 등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강화했습니다. 2014년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지명으로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부의장에 올라 다시 한 번 글로벌 통화정책의 핵심에 섰습니다.
그는 IMF 총재직에 도전했지만, 나이 제한에 막혀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동료 경제학자 로렌스 서머스는 “공정한 세상이라면 피셔는 Fed 의장이나 IMF 총재가 되었어야 마땅하다”며, 그가 전 세계 금융시장에 끼친 영향이 한 세대의 경제질서를 형성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스탠리 피셔는 실용적 사고, 국제적 시야, 그리고 교육자로서의 헌신을 모두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학문과 현실, 사상과 정책을 잇는 다리였으며, 세계 수많은 나라들이 위기를 넘어서도록 도왔습니다. 그의 경제철학은 ‘독립적이되 책임있는 중앙은행’, ‘이론에 뿌리내린 정책실행’, ‘개도국 개발을 위한 구조적 접근’이라는 세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의 가르침과 철학은 수많은 제자들과 정책 결정자들에게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신흥국들도 피셔의 정책적 유산을 따라, 지속가능한 성장과 금융안정을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 되새겨야 할 시점입니다. 문의 (213) 822-2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