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감성 사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푸쉬킨이 건네는 위로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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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감성 사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푸쉬킨이 건네는 위로의 언어

웹마스터

김미향

오클렘그룹 대표


나는 한때 알렉산드르 푸쉬킨의 시에 깊이 매료됐다. 대학시절 마주한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이후에도 내 마음의 힘든 구석이 있을 때 따뜻하게 비춰주는 빛이 되었다. 우리는 종종 삶이 반복해서 나를 속이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기대는 실망으로 돌아오고, 말하지 못한 외로움과 공허함이 마음 깊은 곳에 머물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이 짧은 시는 묵묵히 곁을 지키며 조용히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서러운 날을 참고 견디면 /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 지나간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라


이 시는 삶과 시간, 감정, 철학을 응축하고 있다.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구절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삶의 무게를 견뎌낸 이가 내뱉을 수 있는 깊은 통찰로 다가온다. 특히 푸쉬킨처럼 위대한 작가조차 삶이 자신을 속였다고 느낀 적이 있다는 사실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푸쉬킨은 단순한 시인을 넘어 시대를 정면으로 마주한 인물이기도 하다. 억압이 지배하던 시대 속에 살면서도 그는 인간 내면의 고통과 자유, 품위와 희망을 담아냈다. 푸쉬킨은 유배되어 자유를 박탈당하고 외로움 속에 있었던 중에도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시를 통해 인간 내면의 품위와 인내를 노래했다. 이 시는 그가 지인에게 보내며 쓴 작품 중 하나로, 직접적인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삶은 종종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는 듯 보인다. 그럴 때 이 시는 한 걸음 물러서서 조용히 속삭인다. “지금의 아픔은 순간적인 것이며, 언젠가는 그것조차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라고. 그 한 줄이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내일로 걸어갈 용기를 건넨다. “마음은 미래에 살고”라는 구절은 인간 존재의 방향성과 회복력을 동시에 말해준다. 지금의 고통이 전부가 아님을 믿고 마음을 미래로 옮기는 순간, 우리는 다시 살아갈 수 있다.


이 시는 문학을 넘어 다양한 예술로 재해석되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를 가곡으로 작곡했고, 발레 <푸쉬킨의 시간>은 무대 위에서 고결한 인간정신을 형상화했다. 영화에서도 상실과 회복의 배경으로 자주 인용되었으며, 철학적으로도 스토아철학의 인내, 니체의 ‘운명애’와 연결된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태도는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시는 단지 과거의 문학작품이 아니라, 불확실한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조용한 언어로 건네는 따뜻한 손길이며,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된다. 오늘의 고단함은 당신의 잘못만이 아니라고 위로하는 듯하다. 잠시 주저앉아도 괜찮으며, 다시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이 시는 조용히 말한다.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라.” 삶이 가혹하거나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살아간다.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가고, 푸쉬킨이 말한 것처럼, 훗날 소중한 무엇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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