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영의 마음산책] 미국인과 한국인, 관계의 두 얼굴
권수영
연세대 교수
한국상담진흥협회 이사장
미국에서 유학시절 때 일이다. 처음으로 미국 중남부 한 지역에서 열리는 학술대회를 참석하려고 비행기를 탔다. 나는 방문하는 대학의 근처 명소를 알아보려고, 테네시주 내쉬빌(Nashville)에 대한 책자를 들고 있었다. 내 옆 자리에 있던 한 백인 승객은 대뜸 내 이름을 물었다. 서로 통성명을 한 후, 그 승객은 내게 친절하게 내쉬빌의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들고 있던 책자를 한 번도 들쳐보지 못하고 내려야 했다. 헤어질 때 데이비드라는 이름의 그 승객은 내게 허그까지 하면서 “Good trip, my friend!”를 외쳤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아마 이런 경험을 한두 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특히 미국의 중부나 남부에 가면 이렇게 지나치게 친절한 미국인을 종종 경험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이 외치는 ‘마이 프렌드’를 절대 쉽게 믿으면 안 된다. 특히 나중에 그를 우연히 다시 만나도 우리를 기억하리라고 믿는 것은 문화적 착각이다. 사실 미국인들은 자신이 처음 보는 이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게 보인다는 것을 의식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현명한 한인 여행자라면 잠시 환담을 나눈 옆 자리 ‘마이 프렌드’와 항구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결코 믿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문화적 차이는 어떻게 생긴 걸까?
전통적으로 문화적 차이를 연구하는 인류학자들은 정착문화에 주목한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세계 최고의 나라 시민들이라고 자부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본시 사회적 부적응자들이었다. 유럽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을 발견한 청교도들과 같이 모험가, 방랑자, 심지어는 범죄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정착문화가 거칠 수밖에 없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모두 원주민들과의 전쟁, 독립전쟁과 같은 험난한 개척자의 인생을 살았다.
그래서일까? 미국인들은 항구적인 관계를 그 무엇보다 불편해 한다. 언제 그간의 관계를 끊고, 상대방이 속한 땅을 점령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이 말하는 친구 관계를 과신하지 않아야 지나친 배신감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어 속이 편하다. 그들은 처음부터 우리가 떠올리는 친구 관계를 이해하기조차 어렵다.
우리가 말하는 친구관계란 거의 목숨을 걸 만큼의 친밀한 관계가 아니던가. 이것도 우리 민족이 가진 정착문화와 관련하여 설명할 수 있다. 개척정신이 강한 유목문화와는 달리, 한국과 같은 농경문화는 집단생활이 기본이다. 옹기종기 모여 사는 물리적 연대뿐 아니라, 마음도 나눠야 신뢰를 바탕으로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마이 프렌드’를 외쳐 놓고, 다음 번에는 이름조차 기억 못하면 신뢰할 수 없는 인간으로 전락한다. 그래서일까? 유독 한국인들은 자신이 관계를 맺어 온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하소연할 때가 많다.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면서 경계도 없이 자신과 타인을 동일시하는 문화적 특성 때문이다.
전통적인 미국 문화에 젖어 사는 이들과는 관계를 맺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 철저하게 경계(boundary)를 둔 관계여야 한다. 이 때 경계란 금을 딱 긋고 살라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코로나 팬데믹 시절, 처음 알게 된 ‘거리두기’(distancing)의 개념을 자주 인용하곤 한다. '관계에도 거리두기가 필요합니다' 라는 제목의 책<아래 사진 https://www.book21.com/book/book_view.html?bookSID=5836>을 출간하기도 했다. ‘관계의 거리두기’란 나와 다른 사람은 절대로 같을 수 없다는 전제로, 나와 상대방의 생각과 느낌, 주장을 꺼내놓을 수 있는 중간지대를 만들자는 의미다. 미국 사람들은 철저하게 거리두기를 바탕으로 관계를 맺는다. 친구 관계를 맺으면 같은 생각, 같은 감정을 공유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이런 관계 문화의 강점도 있다. 비즈니스 현장에서 하급자의 의견을 경청하는 일이 한국인들보다 훨씬 자연스럽다. 혁신적인 기업문화가 가능한 것도 이런 이유일지 모른다.
우방 관계가 항구적인 것이라 철석같이 믿어선 안 된다. 지금 대통령이 부재한 대한민국이 불안한 이유다. 미국인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친구 사이에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나’를 외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 자신과 철저하게 다를 수밖에 없는 상대에게 나의 생각과 느낌, 그리고 의견을 조심스럽게, 하지만 당당하게 개진하는 방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