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하고 웅장한 이슬람 건축물에 감탄 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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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하고 웅장한 이슬람 건축물에 감탄 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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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대리석으로 만든 이슬람 최고의 문화유산인 타지마할의 웅장한 모습 앰버궁전으로 가는 길에 거대한 저장시설에 들러 ‘찰칵’!핑크도시로 알려진 자이푸르시의 언덕에 있는 앰버궁전의 위용. 바람의 궁전, 하와마할을 배경으로 인도탐방 일행이 포즈를 취했다. 론김, (하기환), 제인 , 하경철씨(왼쪽부터). 앰버궁전 나하가르 요새궁전에서 내려다 자이푸르시 전경나하가르 요새에 둘러보는 론김 부부 ‘바람의 궁전’ 하와마할 성안에서 바라본 자이푸르의 저잣거리피리소리에 뱀이 춤을 추는 ‘코브라 댄스’는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자주 보게 된다. 하경철씨가 ‘겁도 없이’ 코브라 머리를 만지고 있다. 강심장이다 아직도 왕족이 살고 있는 시티팰리스 궁전아그라 포트의 팔각탑에서 멀리 타지마할이 보인다. 타지마할을 건립한 무굴 황제 샤자한은 아들에게 왕위를 박탈당한 이곳 팔각탑에 갇혀 왕비의 무덤, 타지마할을 보며 여생을 보냈다. (사진 위에서부터)


[나의 여행기 - 한남체인 하기환 회장 일행 인도탐방]  <중>


세계 최고의 이슬람 문화유산 '타지마할'

죽은 왕비 그리워 하며 만든 정교한 무덤

붉은 요새 '아그라포트'의 웅장함도 압권  

엄청난 건축물로 자손들 관광산업 '행복' 

여행지 재래시장 방문은 언제나 즐거워

맛있고 푸짐한 카레 식사 4인분 35불 '싸'  

신호등, 자동차 길 없는 인도 '갈 길 멀어'

"하와마할, 앰버궁전, 시티팰리스 등 보며

힌두와 이슬람 문화 융합 통해 발전 실감"

천문대 '잔타르 만타르' 해시계도 인상적 


아름답고 슬픈 타지마할

다음 날 새벽 5시에 일출을 보러 갠지스강으로 배를 타러 간다고 했다. 나는 그 여정에 빠진 후 짐을 찾으려 공항으로 갔다. 알아본 결과 내 짐이 오후 3시 비행기로 이곳으로 온다고 한다. 그런데 또 문제가 있다. 우린 여기서 기차를 타고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Agra)로 가기로 했던 것. 기차 출발시간은 3시 20분. 기차를 취소할 수 없으니 또 짐 받기는 틀렸다. 항공사 직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짐을 아그라에서 찾게 조치해 달라고 말했다. 짐이 없으니 앞으로 2주 동안 단벌신사로 돌아다녀야 한다. 호텔로 돌아와서 일행과 함께 기차역으로 향했다. 바라나시에서 아그라까지는 직행 비행기가 없기에 기차를 타야 한다. 아그라에서 짐을 찾게 되기를 바라며 기차에 올랐다. 


이제 15년 전 좋았던 바라나시 인상이, 짐 문제까지 겹쳐 다시는 못 올 것으로 느낌이 바뀐 것 같다. 우리가 탄 특급기차는 시설이 좋아 보였다. 바라나시에서 아그라까지는 633km인데 7시간 정도 걸린다. 특급이라도 중간 큰 도시에서는 정차를 했다. 달리는 중간에 저녁을 주고 간식용 음식을 한 번 더 서브한다. 객실은 의자도 깨끗하고 화장실도 좋았다. 한국의 KTX급 열차처럼 보인다. 다만 특급이라지만 느린 것이 약점이었다. 그러나 운임은 놀랍게도 저렴하다. 개인당 18달러 50전. 서비스 받은 음식값만 해도 LA에선 한 사람 당 20달러 이상 들었을 것 같다. 정말 싸긴 싸다. 기차는 저녁 늦게 아그라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미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타지마할(Taj Mahal) 관광 전문가이드를 예약해 놓았다. 아침 8시에 약속한 가이드가 호텔로 왔다. 타지마할은 그야말로 세계적인 관광명소. 당연히 입구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러나 가이드를 대동한 외국인들은 전용 입구 사용이 가능했다. 1631~1648년 무굴제국의 황제 샤자한(Shah Jahan)이, 1631년 세상을 떠난 아내 뭄타즈 마할(Mumtaz Mahal)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무덤. 왕비는 14번째 아기를 낳다가 죽었다고 했다. 흰색 대리석으로 지은 웅장한 타지마할은 인도 이슬람 예술작품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일 것이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세계유산의 최고 걸작인 타지마할은, 22년에 걸쳐서 2만 명이 동원돼 완공했다고 한다. 왕의 명령에 따라 수천여 명의 석공, 대리석 기술자, 모자이크 기술자, 장식업자가 팀을 이루어 건설하였다. 


모든 건물은 사방 정대칭으로 똑같이 만들었다. 4개의 입구와 4개의 탑 어느 쪽에 서서 봐도 같은 크기로 보인다. 하얀 대리석은 이곳에서 400km 떨어진 채석장에서 가져왔고, 꽃무늬와 아라비안글자 조각은 세계 각국에서 들여온 보석돌로 새겨 넣었다. 실제 묘지는 지하에 있고 가묘는 일층 중앙에 설치해서 누구나 볼 수 있었다. 여왕의 관은 건물 정중앙에 위치했는데, 왕의 묘지는 여왕 옆 비좁은 공간에 놓여있다. 왕의 계획은 따로 있었다. 타지마할 맞은 편 야무나강 넘어 검은색 대리석으로 본인의 무덤을 크게 만들려 했다는 것. 기초공사는 끝났으나 왕이 죽는 바람에 완성을 못했다고 한다. 타지마할은 궁전이 아니라 묘지로 지은 것이고, 양 옆 부속건물은 이슬람 모스크였다.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은 슬픔도 간직하고 있다. 순백색 대리석은 달빛 아래에서 은색으로 반짝인다. 동틀 무렵에는 옅은 분홍색을 띠며, 해질녘에는 노을이 붉게 물든다. 이런 걸작을 만든 왕 샤자한은, 친아들 아우랑제브(Aurangzeb)에게 왕위를 박탈당한다. 우리가 방문할 아그라궁전 포트의 팔각탑에 왕은 죄수가 되어 갇혔다. 타지마할 곁을 흐르는 야무나강을 가로지른 아그라 요새의 팔각 탑 감옥. 그곳에서 사랑하는 아내 뭄타즈의 묘를 바라보며 여생을 보냈다는 것이다.


아그라 포트를 만든 이슬람 건축술

타지마할에서 가이드와 헤어지고 우리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툭툭, 오토릭샤를 탔다. 매연을 풀풀 풍기는 열악한 오토릭샤를 타고 아그라궁전 포트를 찾았다. 한국인들은 영어를 그대로 읽어 아그라 포트(Agra Fort)로도 많이 불리는 성이다. 인도를 점령한 무슬림의 무굴제국의 붉은 요새이자 왕궁. 우리가 들렸던 타지마할 서문(West Gate)에서, 서쪽으로 약 3km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성을 둘러보니 정말 그 규모가 굉장했다. 테라스에 오르니 과연 타지마할이 보인다. 아들에게 유폐당한 황제 샤자한이 타지마할을 직접 바라봤다는 팔각탑도 있다. 궁성의 규모가 대단히 넓다. 얼마나 큰지 그 부지의 20%만 관광객에게 개방하고, 80%는 현재 인도 군대가 사용한다는 것. 공개된 성을 돌아보는 데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성을 탐방하며 그 웅장함에 거듭 놀랄 수밖에 없다. 서울의 경복궁과 비원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곳곳에 사용했던 방도 무수히 많았다. 정말 대단한 규모였다. 당시 힌두교를 믿는 국가를 멸망시킨 무슬림들이 지은 궁전 혹은 성. 이렇게 화려하고 큰 이슬람 궁전을 지은 노동력은, 전쟁에서 진 인도의 힌두인들이었을 것이다. 가이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현지 힌두인이나 이슬람인이 충돌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한다. 그건 가이드의 생각일 거고, 지금도 인도 북부 카슈미르에서는 두 종교분쟁이 첨예하다. 그리고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가 종교 때문에 인도에서 분리 독립했다. 그러다 인도에서 무슬림 제국이 다시 멸망하자, 인도는 도로 힌두교로 돌아왔다. 종교의 복원력이 과연 대단하다는 걸 우리는 역사에서 목격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대규모 토목과 건축은 정교한 과학이 필요하다. 무슬림들의 과학은 그 당시 세계의 톱클라스였다. 우리가 사용하는 아라비안 숫자도 이슬람이 만들었다. 당시 수학과 천문학 등에서 이슬람은 월등하게 앞선 문명을 갖고 세계를 지배한 것이다. 그때 만들어진 타지마할과 아그라 포트. 돌아 온 힌두인들이 그것을 관광상품으로 돈을 버는 걸 보면, 세상은 과연 돌고 돈다. 앞으로 가야 할 유적지들도 결국 종교 유적이 대부분일 것이다. 아그라 포트에서 나온 우리는 또 다른 무굴시대의 묘지를 보러 갔다. 1500년대에 지어진 묘지인데 타지마할보다 상대적으로 작기는 했지만 이곳도 상당한 규모였다. 일부 대리석이 떨어져 쇠락한 곳이지만 15세기에 이슬람들이 이렇게 정교한 건축을 한 것에 놀란다. 


관광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중국 진시황의 묘. 이집트 피라미드. 모두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에 이런 대단한 묘지를 만들었을 것이다. 엄청난 노동력을 동원하여 만든 건축물들. 관광은 굴뚝 없는 산업이라고 했다. 이제 후손들은 퍼내도 마르지 않는 이런 관광자원을 이용해서 잘 먹고 살고 있다. 지금 이들은 선조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다. 다른 유적지 탐방은 너무 더운 날씨에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서 론시어지 담당자에게 비행기에서 찾지 못한 내 짐 이야기를 했다. 그가 확인한 바, 반갑게도 내 짐이 우리가 떠나온 바라나시에 도착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또 자이푸르(Jaipur)로 가야 한다. 짐을 다시 자이푸르로 보내줄 것이라고 말한다. 한 곳에 있다면 쉽게 받겠지만 계속 장소를 옮기니, 내가 짐과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다. 


사람 냄새나는 아그라 재래시장

이튿날 오후 5시 기차로 자이푸르로 가기로 했으니 시간이 넉넉하다. 호텔에서 푹 쉰 다음에 이곳 재래시장을 돌아 보기로 했다. 모든 나라의 시장은 그 동네문화를 한눈에 가늠할 수 있는 또 다른 관광지였다. 아그라에 있다는 서울의 남대문시장 같은 곳을 둘러보기로 하고 호텔을 나섰다. 인도는 저렴한 물가 때문에 모든 것이 가성비가 좋아 보인다. 물건값이 정말 저렴했다. 어제도 카레 위주로 4명이 푸짐하게 저녁식사를 했는데 35달러 밖에 나오지 않았다. 괜찮은 식당에 맛있고 또 양도 푸짐했는데 그 정도 가격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시장에는 역시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나는 갈아입을 속내의와 양말, 그리고 티셔스를 샀다. 


시장 구경은 언제나 재미있다. 어느 골목으로 갔더니 가죽제품이 너무 싸다. 거기서 구두와 슬리퍼, 그리고 작은 가방을 사서 앞으로 남은 여행준비를 했다. 사람이 넘치는 인도. 아그라시장의 인파도 장난이 아니다. 어느 나라나 대도시로 사람이 모인다. 수도 뉴델리는 인구가 3400만, 뭄바이는 2300만, 바라나시는 430만. 우리가 시장을 보고 있는 아그라는 230만 정도라고 한다. 자이푸르는 430만 정도로 10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라고 했다. 인구 대국답게 어디서나 사람이 넘쳐 서로 부딪치듯 사는 것 같다. 가난한 나라의 무질서는 무섭기까지 하다. 교통신호도 없고 자동차 길 라인도 없고, 그냥 무작정 밀어대는 사람들. 틈만 나면 주저없이 끼어드는 사람이나 차량이 이기는 곳이다. 극심한 폴루션(Pollution)이라 평균수명도 많이 낮을 건 분명했다. 


경제학자들은 인도가 중국을 대신해서 뜨는 경제강국이라고 평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여행하며 만난 민낯의 인도는 아직 모든 면에서 갈 길이 먼 것 같다. 중국을 따라잡으려 한다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무질서를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지 정치인들도 고민이 많을 것 같다. 11월이 다 됐는데도 한국보다 인도가 훨씬 덥다. 당연히 더운 것은 위도가 한국보다 10도나 낫은 남쪽이라 그렇다. 뉴델리 위도가 27도인데 서울은 37도. 남쪽답게 아열대 기온이라 더운 것이다. 


오후 5시에 역에서 자이푸르로 가는 기차를 타고 보니 급행이 아니다. 고작 270km정도 가는 데 무려 5시간이나 걸린다. 그래도 기차는 시간을 맞추어서 떠났다. 객실 앞쪽에는 사람들이 선 채 꽉 차서 숨쉬기조차 힘들 것 같았다. 입석이 많은 탓이다. 다행히 우리가 산 티켓은 침대칸이었다. 한방에 벙커 배드 4개를 양쪽으로 놓고 누워 잘 수 있게 된 객실. 그동안 걸어 다닌 게 피곤했던지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내가 자는 동안 일행이 컵라면으로 저녁을 먹었다고 했다. 객실 전기에 가지고 있는 전기밥통 같은 것으로 물을 끓인 것이다. 얼마나 깊게 잠이 들었으면 라면을 끓이고 먹는 소리를 못 들었을까. 그만큼 인도여행은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핑크도시(Pink City) 자이푸르

오늘은 10월 12일 토요일. 아침에 가이드와 만나서 핑크도시(Pink City)라 불리는 자이푸르 관광에 나섰다. 인도 북부에 위치한 세 개의 도시인 델리, 아그라, 그리고 이곳 자이푸르를 묶어서 인도 북부의 골든 트라이앵글이라고 부른다. 관광 사진에 많이 나오는 하와마할은 자이푸르 시내 중심부에 우뚝 솟아 눈에 띄는 명소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궁전은 바람의 궁전(Palace of Winds)으로도 불린다. 하와(Hawa)는 산들바람을 의미하고 마할(Mahal)은 궁전을 의미하니, 하와마할은 바람의 궁전이다. 성은 모두 핑크색 사암으로 만들어졌다. 궁전의 격자 세공은 궁녀들이 눈에 띄지 않고 거리에서 열리는 일상생활과 축제를 관찰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하와마할을 본 후 우리는 앰버(Amber) 팰리스로 갔다. 앰버궁전은 산 위에 있어 앰버포트(Amber Fort)로도 불린다. 궁전까지 코끼리를 타고 관광객이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힌두교 축제기간이라 코끼리도 쉬는 시간이란다.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성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중간에 힌두교 사원과 거대한 물탱크 저장소를 보았다. 몬순 시즌 여름에만 비가 오는 아주 메마른 지역이라 물 저장을 위해 만든 물탱크였다. 앰버궁에 들어가는 입장료는 현지인보다 외국인이 몇 배 이상 비싸다. 앰버궁전은 말을 들은 대로 화려했고 규모가 어마하게 컸다. 이슬람 건축양식인 돔 형식과 아치형의 조합으로 지어진 궁전. 앰버궁도 이슬람이 이 지역을 정복하고 지은 궁전이었다. 


내실에 정사각형 한 면마다 3명씩 여왕이 거처할 수 있었다는 방이 보인다. 그러니까 할렘인 셈인데 왕은 12명의 왕비를 거느리고 있었던 것. 내실을 경비하는 군인은 한국 왕조시대의 환관같이 모두 거세를 한 사람만 뽑았다고 한다. 혹시 왕비와 눈이 맞아 정분이라도 날까 봐 사전 대비를 한 것이라고 했다. 엠버궁전을 보고 가이드가 권하는 곳을 찾았다. 나무도장을 옷감에 찍어서 수를 놓는다는 곳이었다. 그곳엔 인도인들이 즐겨 입는 사리옷도 있고 캐시미어 실크로 만든 스카프도 보였다. 나는 15년 전 인도에 왔을 때 무지하게 바가지를 쓴 기억이 있다. 관광객 위주의 믿을 만한 쇼핑센터였는데 덤터기를 쓴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인도에서 그런 경험은 많은 사람이 겪었던 일이다. 돌아오는 길에 납골당 같은 묘지를 돌아보았다. 왕의 가족묘 같은 곳이라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죽은 다음에 들어갈 묘지를 성대하게 만드는 건 닮은 꼴이다. LA공원묘지에도 가족묘를 볼 수 있다. 수십만달러 들여서 대리석으로 치장하고 좋은 위치에 모시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시티팰리스와 잔타르 만타르 천문대

다음 날 아침은 시티팰리스를 찾았다. 자이푸르 구시가지 한복판에 있는 이 궁전은 자이푸르의 랜드마크로 불리고 있다. 옛 시가지에 핑크색 외벽 안에 시티팰리스 궁전이 있다. 궁전 안에 유럽에서 수입한 유리로 벽과 천장을 장식한 방이 보였다. 정말 왕족들 사치의 극치를 보는 듯했다. 궁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하는 4개의 출입구를 만들어 놓았다. 계절에 맞게 각양각색의 타일로 출입구를 장식한 것이 아름답고도 이채롭다. 무슬림이 점령하며 기존의 힌두 문양과 조합해서 만든 작품 같은 건물이었다. 문화는 융합을 통해 더 발전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지금도 이 궁전 한쪽에는 왕의 후손들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다. 


궁전 바로 옆에 잔타르 만타르라는 천문대가 있다. 1700년대에 만든 것. 이 천문대에는 세상에서 제일 큰 해시계가 있는데, 2초 정도의 오차로 정확하다고 했다. 이곳엔 천문학을 연구할 수 있는 모든 시설물이 존재했다고 한다. 이런 문화가 이슬람이 천문학, 수학 등 엄청난 문명을 발달시킨 것이다. 밖에서 보았던 핑크시티 자이푸르 대표작품인 타와마할 벽을 안에서 볼 수 있게 되어 올라갔다. 당시 궁의 할렘에서 사는 여인들은 모두 왕의 소유물이었다. 일단 궁에 들어오면 밖에 세상과 단절이 되니, 이 벽은 밖의 저잣거리를 보고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작은 문과 구멍을 통하여 밖의 세상을 보게 만든 것이다. 길에서는 안쪽을 볼 수 없게 설계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들렸던 타지마할 무덤 4개의 높은 탑에도 무슬림 과학이 숨어 있다. 바깥쪽으로 2~3도 경사 지게 만들었다고 했다. 혹 지진으로 탑이 파괴될 때, 본 건물로 쓰러지지 않게 지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이슬람 건축가들의 세세한 설계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아침부터 강행군으로 더위 속에 관광을 강행하고 나니 많이 지쳤다. 시원한 호텔방으로 돌아오니 살 것 같다. 그때 내 짐이 자이푸르공항에 도착했으니 호텔로 보내준다고 했다. 숨바꼭질을 끝내고 드디어 만난다니 무척 반갑다. 옷과 세면도구 찾을 생각을 하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기다림이란 조급증 때문일까? 곧 보내준다는 짐은 긴 기다림 끝인 늦은 밤 11시에 도착했다. 


자이푸르 중요한 관광은 끝났다. 다음 행선지 우다이푸르(Udaipur)로 가는 비행기는 오후 5시였다. 오전에 엠버궁전 옆 아라발리 산정에 지은 나하가르 요새(Nahargarh Fort)를 찾았다. 나하가르성은 도시방어용으로 건축된 요새였다. 앰버궁전에서 사파리형 지프차로 끝없는 길을 올라 요새에 도착했다. 산꼭대기에 지은 요새는 군인들이 주둔하며 도시들을 경비했다. 또 이곳에도 궁전을 지어 왕이 살았다고 한다. 그 당시 산꼭대기까지 건축자재를 운반해서 이렇게 큰 궁전과 요새를 지은 것에 그저 놀랄뿐이다. 산 정상에서 자이푸르시를 360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요새에는 그 당시 사용했던 무지하게 큰 대포도 진열이 되어 있었다. 성곽으로 둘러싼 요새이며 궁전에는 야생 원숭이도 무리지어 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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