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인구소멸과 K-로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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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인구소멸과 K-로컬리즘’

웹마스터

김희식

(주)건축사무소 광장 상무



2박3일 동안 손주들과 남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LA에 살고있는 아이 둘도 방학을 맞이하여 합류했습니다. 읍내에 있는 저희 부부 숙소를 베이스 캠프로 삼고, 보성, 영암, 완도 등 주변 시골동네, 강과 바다, 편백나무숲, 보성차밭 등을 둘러 봤습니다. 


탐진강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도 건너 뛰면서 두 가정 다섯 아이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하교 후 매일 밤 10시가 넘어서야 학원공부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2짜리 서울에서 온 손녀는 모처럼 학원 안 가고 잠도 푹 잘 수 있었다고 좋아합니다. 나머지 초딩 네 아이는 LA나 서울과 다른 생소한 시골체험과 해수욕장 수영을 하면서 신나는 모습입니다. 평소 자주 못 보던 중 2년생부터,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나이마다 다른 정서와 행동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평소 몰랐던 마음도 들여다 볼 수 있었지요. 


저녁 때가 되어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는데 TV뉴스 화면에는 경남 지방 어느 초등학교 교실이 등장합니다. 6학년 전체 학생 6명 중, 80대 할머니 4명이 함께 교실에서 공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폐교에 직면한 학교를 살리기 위해 노인들도 입학시킨 사례입니다. 인구 소멸, 저출산으로 나라 전체가 심각한 상태의 한 단면입니다. 웬지 옆에 있던 두 딸과 사위를 보면서 다섯 아이 키우느라 애쓴다, 대견스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 한국내 지자체나 기업에서 인구소멸, 저출산, 결혼, 출산장려 관련한 인센티브 홍보 내용이 자주 소개됩니다. 예컨대 전남 화순에서는 줄어드는 인구의 고육지책으로 타 지역에서 전입오는 청년가족에게 장기간 아파트 한 채 월 임대료를 단돈 만원에, 인천에서는 내년부터 신혼부부나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를 대상으로 월 임대료 3만원에 임차 한답니다. B건설사는 신생아를 출산하는 직원에게는 무조건 1억원 지급, H백화점은 직원이 셋째 자녀를 출산하면 출산축하금 1000만원 지급, 임신한 배우자 검진에 아빠가 동행할 수 있는 유급휴가 제도 등 기발한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금욕의 상징인 불교계 조계종단에서 2030 미혼남녀의 인연을 맺어주는 '나는 절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젊은 층으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인구증가 캠페인과 관련,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시대별 유행하던 구호도 있습니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60년대), 딸 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70년대) ’잘 키운 딸, 열 아들 안 부럽다(80년대)” 등의 구호가 생활 속의 실천강령으로 자리잡던 때 였습니다. 그런데 2024년 현재 한국은 OECD 국가 중 출산율 최하위를 기록하는 중입니다. 전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52%의 인구가 몰려사니 자원경쟁은 갈수록 심화합니다. 상대적 열위의 후속세대는 위험카드인 가족분화와 자녀출산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수도권에 떠밀리어 소멸돼 가는 지방 소도시를 균형있게 살려야 한다는 사회경제학자 전용수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일부를 옮겨봅니다. “인구문제는 자원독점이 빚어낸 비정상과 불균형에 기인한다. 늦었지만 지역 특화적인 창발(發)모델을 고민할 때다. 229 기초지자체는 229개의 로컬 모델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지방에는 먹이가 없고, 서울에는 둥지가 없다는 말이 있다. 2030세대의 먹먹한 현실을 보여주는 문장이다. 어디든 청년이 잘 살아냄직한 환경이 아니라는 뜻이다. 순환경제가 멈춰선 지방에는 먹이(고용)가 없고, 인프라와 일자리가 있는 서울로 왔더니 둥지(주거)가 없어 알(출산)을 낳을수 없다. 먹이와 둥지가 한 곳에서 해결되지 않는 복합위기란 얘기다. 불확실성이 커지면 결혼 및 출산 의사결정은 신중해진다. 미래선택은 안정된 환경이 구축될 때 실현된다. 한국형 초저출산이 매년 세계신기록을 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인구소멸과 로컬리즘, 전용수著, 2023).


건강한 지방발전과 순환경제를 구축하는 것, 지방을 떠나지 않아도 청년세대의 미래와 희망을 실현해 줄 직업, 주거, 교육, 의료, 생활인프라를 확충하는 것, 즉 ‘K-로컬리즘’의 실현이야말로 인구소멸, 저출산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라는 책 속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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