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 가서 컵라면만 먹기로 했어요”
강달러에 미국행 꺼리는 본국 풍경
닷새 동안 식당은 하루 한 번씩만
승무원 캐리어에도 일회용 음식들
꿔준 돈 환율 차이, 우정도 금 갈 판
서울에 거주하는 송우석(34)씨는 결혼을 앞두고 달러화 가치가 크게 뛰어 고민이 크다고 토로했다. 신혼여행으로 미국과 멕시코를 가기로 했지만,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급등해 비용이 당초 예상보다 20~30% 늘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미국에서 체류하는 5일 동안 식당은 하루에 한 번만 가고, 나머지는 컵라면과 도시락 등으로 해결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송씨는 “예상치 못한 달러화 급등 때문에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일 신혼여행 계획이 차질을 빚게 돼 답답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최근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해외여행을 앞둔 신혼부부나 해외 출입이 잦은 승무원, 직장인 등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달러화 가치가 뛰면 원자재 수입 비중이 큰 기업 등이 당장 큰 타격을 받는데, 최근 환율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영향이 국민 일상으로도 번지는 상황이다.
지난 2년여간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유지돼 온 출입국 규제가 올 들어 풀리면서, 많은 신혼부부들이 해외를 신혼여행지로 선택했다. 그러나 최근 한 달간 달러화 가치가 빠르게 치솟으면서 당초 계획한 예산보다 부담이 크게 늘었다. 강달러 탓에 여러 예비부부들은 행선지를 미국 대신 다른 국가로 돌리거나, 숙소 등급을 낮추고 일정을 줄이는 방식 등으로 여행 계획을 바꾸고 있다.
경기 고양시에 거주하고 있는 강모(31)씨는 신혼여행을 스페인으로 가기로 했다. 원래 하와이 등 미국 휴양지를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최근 달러화 가치가 급등하자 결국 미국행을 포기했다. 그는 “환율이 너무 올라 미국 쪽은 엄두도 못 낸다”며 “그나마 스페인이 소비자 물가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아 여행지를 바꾸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몇몇 여행사에서는 달러 가치가 올라 패키지여행 상품의 구성을 바꾸겠다고 통보한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해외에서 체류하는 기간이 많은 승무원 역시 달러 가치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항공사에서 지급하는 해외 체류비는 코로나 사태 전과 비슷한 수준인데, 최근 환율이 급등하자 비용 부담이 커졌다는 것이다.
5년 차 승무원인 이모(29)씨는 최근 비행 전 캐리어에 컵라면, 간식 등을 챙겨가는 승무원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환율과 물가가 오르며 이동, 식사 등을 회사가 지급하는 체류비로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동료 승무원 중 컵라면 등 간편한 식사 대용 음식을 챙기지 않는 사람들을 보기가 더 어려운 상황”이라며 “항공사들이 환율 변화를 감안해 체류비를 늘려줬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LA에 사는 정모씨는 몇 달 전 친구에게 빌려준 돈 때문에 의가 상하게 생겼다. 집안 사정상 급하다며 1000만원만 융통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8500달러를 보내줬다. 당시 환율이 1200원 조금 넘을 때였으니,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런데 갚을 때가 되니 친구가 1000만원만 보내겠다는 것이다. 환전하면 7200달러 정도 밖에 안되는 금액이다. 이자는 고사하고 1300달러를 손해봐야 할 판이다. 그렇다고 얘기를 하자니 그렇고, “야속한 마음에 몇 십년 우정이 금 가게 생겼다”며 속만 태우는 실정이다.
백종인·이정수 기자